출생 ~ 사망: 1769년 12월 14일 (베를린) ~ 1846년 10월 14일 (파리)

- 티에볼트, 폴 샤를 프랑수아 아드리앙 앙리 디우돈네 남작 (Thiébault, Paul-Charles-François-Adrien-Henri-Dieudonné)
폴 샤를 프랑수아 아드리앙 앙리 디우돈네 티에볼트(Paul-Charles-François-Adrien-Henri-Dieudonné Thiébault)는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을 관통하며 복무한 프랑스의 장군이자, 재치 넘치는 회고록으로 명성을 남긴 인물이다.
혁명 전쟁 시기의 군 경력
1792년 채무 청산 업무에 종사하던 티에볼트는 같은 해 8월 파리에서 자원입대하여 11월에는 부사관이 되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제대했다. 그러나 1793년 2월 투르네 연대의 소위로 다시 군에 복귀했고, 곧 대위로 진급하여 발랑스(de Valence) 장군의 부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793년 4월, 배신한 뒤무리에(Dumouriez) 장군의 공모자로 지목되어 체포되는 위기를 겪었으며, 5월 말에야 석방되었다. 이후 북부군(Armée du Nord)에서 1794년 말까지 복무한 그는 내지군(Armée de l'Intérieur)으로 배속되어 1795년 10월 5일(방데미에르 13일) 왕당파 반란 진압 작전에 참여했다.
이탈리아 원정과 제정 시기
얼마 후 이탈리아군으로 전출된 티에볼트는 참모장 직무를 수행했으며, 제노아 공성전 당시 마세나(Masséna) 장군의 추천으로 준장으로 승진했다. 오스트리츠 전투에서 부상을 입기도 했던 그는 1808년 포르투갈 방면군에서 사단장(소장)으로 진급했고, 1812년 말까지 이베리아반도 전역에서 복무했다.
1811년에는 제국 남작 작위를 받았으나, 카파렐리(Caffarelli)와의 잦은 갈등 끝에 소환되었다. 1813년부터 1814년까지는 다부(Davout) 원수와 함께 끝내 항복하지 않았던 함부르크에 갇힌 채 지냈으며, 백일천하(백일 정권) 기간에는 파리 방어전에 참여했다.
성격과 회고록, 그리고 개선문
총명하지만 다투기를 좋아하는 까다로운 성격이었던 티에볼트는 익살스러우면서도 통렬한 비평이 담긴 회고록을 남겼다. 이 회고록은 독특한 위트 덕분에 출간 당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오늘날에도 나폴레옹 시대를 연구하는 귀중한 1차 사료로 평가받는다. 그의 이름은 파리 개선문(Arc de Triomphe)에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