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크(pike)는 장병기(폴암)의 일종으로, 보병이 다루는 매우 긴 창을 가리킵니다. 주된 용도는 기병의 돌격을 막아내는 것이었으며, 유럽 전장에서 오랫동안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무기였습니다.
파이크가 주력 무기였던 두 시기
역사적으로 파이크가 주요 무기로 활용된 시기는 크게 두 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마케도니아 팔랑크스(밀집 대형) 병사들은 '사리사(sarissa)'라 불리는 3~7미터에 달하는 초장창을 사용했습니다. 엄밀히 말해 이를 '파이크'라고 부르는 것은 후대의 분류이지만, 그 형태와 운용 방식은 파이크와 같았습니다.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1314년 배넉번 전투와 1386년 젬파흐 전투를 계기로 스코틀랜드와 스위스가 파이크를 다시 도입하면서, 이 무기는 유럽 전장에 부활하게 됩니다.
총검의 발명과 파이크의 소멸
17세기 말 총검(bayonet)이 발명되면서 파이크는 자연스럽게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총검 덕분에 머스킷 총병 스스로도 기병의 공격에 맞설 수 있게 되었고, 별도의 창병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파이크를 운용한 대표 부대
- 마케도니아 팔랑크스
- 란츠크네흐트(독일 용병 부대)
- 스페인 테르시오
프랑스에서의 파이크
파이크는 16세기 초 프랑스 군대에 등장하여 17세기 말까지 사용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기의 파이크
프랑스 혁명 당시 파이크는 일반 민중의 무기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792년 7월에는 라자르 카르노가 군수 창고에 보관된 모든 파이크를 국민에게 지급하고, 추가로 30만 개를 새로 제조하자고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1789년 10월 5일과 6일의 사건 당시 파리 시민들은 대부분 이 파이크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폭동군에 의해 참수된 인물들의 목이 이 차갑고 날카로운 무기 끝에 꽂혀 행진되기도 했는데, 바스티유 감옥 사령관 베르나르르네 조르당 드 로네, 상인 감독관 자크 드 플레셸, 재무 관료 조제프 풀롱 드 두에, 베르티에 드 소비니 남작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1793년 말, 육군 장관은 여러 대대에 파이크를 지급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 것이라 기대했지만, 총기로 무장한 적군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