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타라와 전투: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저주받은 해변'의 비극

타라와 전투: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저주받은 해변 의 비극

이 전투는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으며, '저주받은 타라와의 해변'은 미국 종군기자들이 가장 즐겨 다루던 소재 가운데 하나였다. 타라와 환초 베티오의 피로 물든 해변에서, 해병대 전사자들의 시신이 파도에 밀려 산호 모래사장 위로 천천히 떠밀려 오는 모습을 담은 사진만큼 미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새긴 이미지는 거의 없었다.

베티오 상륙, 새로운 국면의 개막

베티오 섬에 대한 상륙 작전은 태평양 전쟁의 완전히 새로운 국면, 즉 '환초 캠페인(campaign of the atolls)'의 서막을 열었다. 다행히 이 캠페인은 짧은 기간에 종결되었지만, 그 출발점은 극도로 잔혹한 것이었다.

1943년 여름 초,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마셜 제도 정복에 앞서 반드시 거쳐야 할 핵심 단계로 길버트 제도 점령을 결정했다. 이 환초들은 일본 본토를 향한 중앙태평양 횡단 작전에 필요한 공군 기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예정이었다.

일본군의 점령과 평온했던 시절

당시 영국령이었던 길버트 제도는 1941년 12월 10일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후 이 지역은 1943년 말까지 비교적 평온한 시기를 보냈다. 평화를 깬 유일한 사건은 1942년 8월, 미군 특공대가 마킨 환초를 기습하여 일본군 70명을 사살하고 무선국을 파괴한 작전이었다.

기습이 불러온 일본군의 방어 강화

그러나 이 기습 작전은 오히려 일본군 최고사령부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일본군은 길버트 제도, 특히 타라와의 방어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일본군의 구상은 다음과 같았다. 타라와 환초가 미군의 공격을 최대한 버텨내는 동안, 트럭 섬(Truk)의 해군 항공 부대가 미군 주력 함대와 교전에 나서고, 라바울(Rabaul)의 항공 전력은 비스마르크 제도 방면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군은 결정적 해전을 벌일 절호의 기회를 만들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