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외젠 프랑수아 비도크(Eugène-François Vidocq): 도둑에서 세계 최초의 명탐정으로

외젠 프랑수아 비도크(Eugène-François Vidocq)는 1775년 7월 24일 프랑스 아라스(Arras)의 미루아르 드 브니즈 거리 222번지에서 태어나, 1857년 5월 11일 파리 생피에르포팽쿠르 거리(현재의 아멜로 거리 82번지)에서 생을 마감한 프랑스의 모험가이자 탐정입니다.

빵집 주인의 아들로 태어난 비도크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절도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12세에 이미 어른 몸집을 가졌던 그의 큰 체구는 범행을 더욱 쉽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16세 때 부모에게서 돈을 훔쳐 아라스를 떠난 그는 혁명군에 입대하여 발미 전투와 제매프 전투에 참전했지만, 이후 군대를 탈영했습니다. 1793년에는 군에서 추방되었고, 이후 파리와 프랑스 북부 사이를 오가며 도적이자 사기꾼으로서의 방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감옥 생활과 대담한 탈옥

1796년 12월 27일, 비도크는 "공적 및 공증 문서 위조" 죄명으로 두아이(Douai) 형사법원으로부터 8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비세트르(Bicêtre) 수용소에서 장 구필(Jean Goupil)에게 사바트(프랑스 전통 무술)를 배운 그는, 브레스트 항구의 형무소로 향하는 죄수 행렬에 편입되었습니다. 특히 고된 이 이동은 스물넷 하루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비도크는 이 기회를 틈타 콩피에뉴 숲에서 첫 번째 탈옥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죄수 행렬은 공화력 6년 니보즈월 24일(1798년 1월 13일) 브레스트에 도착했고, 행렬은 브레스트 입구의 퐁타네젠 병원에서 멈추어 죄수들을 이송했습니다. 비도크는 다시 한번 탈출을 시도했지만, 담장을 넘다가 양발을 삐끗해 또다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3주 후 그는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당시 수감 등록부에는 그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2세, 신장 5피트 2인치 6라인; 밝은 갈색 머리카락, 눈썹과 수염은 같은 색; 타원형 얼굴; 회색 눈, 큰 코; 보통 크기의 입, 둥글고 갈라진 턱, 낮은 이마, 오른쪽 윗입술에 흉터; 귀에 구멍이 뚫려 있음."

수감된 지 겨우 여드레 되던 날, 그는 자신이 일하던 조선소에 미리 숨겨둔 선원 옷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습니다. 몰래 갈아입은 그는(비도크야말로 진정한 변장의 달인이었습니다) 아무런 의심 없이 브레스트를 빠져나갔습니다.

1799년 다시 체포된 그는 이번에는 툴롱(Toulon) 감옥으로 이송되었지만, 1800년 3월 6일 또다시 화려한 탈옥에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 그는 범죄 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성과 존경을 얻게 되었습니다.

경찰 수사국(Sûreté)의 수장

1806년, 비도크는 파리 경찰에 정보 제공자로서 자신의 서비스를 제안했습니다.

1811년에는 경찰청장의 명으로 수사국(Sûreté) 여단의 수장에 임명되었습니다. 이 경찰 조직의 대원들은 전과자 출신들로, 범죄 세계에 잠입하는 것이 임무였습니다. 뛰어난 관상 능력을 지닌 그는 한번 마주 본 사람이라면 분장을 했다 해도 놓치지 않고 알아보았으며, 그 자신도 변장의 달인이었습니다.

그의 수많은 성공과 비정통적인 수사 방식은 애호가만큼이나 비판자도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1811년부터 1827년까지 그의 부하들은 일반 경찰보다 무려 3배나 많은 검거 실적을 올렸습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기존 경찰은 여러 방법으로 비도크를 흔들려 했습니다.

그의 적은 범죄 세계뿐 아니라 권력 내부에도 있었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상관들은 그에게 사임을 강요했습니다. 비도크가 검거한 여러 인물들은 그가 범죄를 자작극으로 꾸며낸 뒤 가담자들을 체포함으로써 자신의 치안 능력을 과시했다고 고발했으나, 법원은 이러한 혐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비도크는 직위에서 물러나 알라르(Allard)로 교체되었습니다. 한편 왕정복고 말기에 나타난 도시화와 노동자 계급의 형성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가게 만들었습니다.

상업 정보 사무소와 최후

1827년, 비도크는 수사국 수장 자리에서 사임하고 파리 근교 생망데(Saint-Mandé)로 이주해 작은 종이 공장을 세웠습니다. 그는 변조가 불가능한 종이를 발명하기도 했습니다. 1828년에는 회고록을 출간해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 책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의 소설 속 인물 '보트랭(Vautrin)'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종이 공장 사업으로 파산한 그는 1832년 치안 국장 자리를 7개월간 다시 맡았다가, 공직을 완전히 떠나 1833년 '상업 정보 사무소(Bureau de Renseignements)'를 설립했습니다. 이곳은 상인들에게 유료로 경제 정보와 감시 서비스, 그리고 정실을 저지른 배우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세계 최초의 민간 탐정 사무소였습니다.

82세의 비도크는 1857년 5월 11일, 파리 아멜로 거리 82번지(구 생피에르포팽쿠르 거리 2번지)에서 콜레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묘소는 현재까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내와 함께 생망데에 묻혔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해당 시의 행정 당국은 이를 부인했습니다. 다만 장례식은 파리 3구의 생드니 뒤 생사크르망(Saint-Denys-du-Saint-Sacrement) 교회에서 거행되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