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라인 보나파르트, 두 시칠리아의 왕비
마리 아농시아드 보나파르트(Marie-Annonciade Bonaparte), 통칭 캐롤라인(Caroline)은 프랑스 제1제정 시대의 인물로, 두 시칠리아 왕국의 왕비였습니다. 그녀는 1782년 3월 25일 코르시카의 아작시오에서 태어나 1839년 5월 18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출생과 가족 배경
그녀는 카를로 마리아 디 부오나파르테(Carlo-Maria di Buonaparte)와 마리아 레티치아 라몰리노(Maria-Létizia Ramolino)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의 여동생이었습니다. 보나파르트 가문의 자녀 중 하나로 태어난 그녀는 오빠 나폴레옹의 권력 상승과 함께 유럽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됩니다.
요아킴 뮈라와의 결혼
1800년, 캐롤라인은 나폴레옹 휘하의 유명한 기병 지휘관이자 훗날 원수가 되는 요아킴 뮈라(Joachim Murat)와 결혼했습니다. 이 결혼은 정략적 성격이 강했지만, 부부는 네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자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루이즈 뮈라(Louise Murat)
- 뤼시앙 뮈라(Lucien Murat)
- 아실 뮈라(Achille Murat)
- 레티치아 뮈라(Létizia Murat)
베르크 대공비에서 나폴리 왕비로
1806년 캐롤라인은 베르크와 클레베(Berg and Cleves)의 대공비가 되었고, 이후 1808년부터 1814년까지 남편 뮈라가 나폴리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나폴리의 왕비로서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높은 지위에 걸맞은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예술과 예술가들을 후원했으며, 폼페이 유적 발굴 사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했습니다. 또한 나폴리에 실질적으로 유용한 각종 시설들을 설립하며 도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섭정 활동과 말년
남편 뮈라가 나폴리를 떠나 있던 기간 동안 캐롤라인은 섭정으로 선언되어 국정을 수행했습니다. 그녀는 공공 질서와 평화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으며, 영국 해군 제독과 협상하여 옛 신민들의 이익을 보호한 뒤에야 나폴리를 떠났습니다.
이후 그녀는 빈 근교의 하임부르크(Haimburg) 성으로 은거하여 오직 자녀 교육에만 전념했습니다. 1830년 이후에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가족들과 재회하여 남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녀는 '리포나 백작부인(Comtesse de Lipona)'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는 나폴리의 이탈리아어 명칭 '나폴리(Napoli)'의 철자를 재배열한 아나그램(anagram)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