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

제3해병보병연대(3e Régiment d'Infanterie de Marine, 3e RIMa)의 뿌리는 1622년 리슐리외(Richelieu) 추기경이 창설한 '바다 중대(Compagnies de la mer)'에서 비롯된 해병대의 계보와 맞닿아 있다.
연대의 기원
1831년 5월 14일 칙령에 따라 루이 필리프(Louis Philippe) 국왕은 해병보병 연대 2개를 창설했다. 하나는 마르티니크에, 다른 하나는 과들루프에 배치되었다. 이어 1838년 11월 20일 칙령으로 툴롱(Toulon)에 본부를 둔 제3연대가 신설되었으며, 당시 제1·제2연대는 각각 브레스트(Brest)와 로셸포르(Rochefort)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
1854년 8월 31일 법령으로 제4연대가 창설되면서 해병부대(Troupes de Marine)는 전면적으로 재편되었다. 로셸포르에 본부를 둔 제2연대는 제3연대로 번호를 바꾸었고, 툴롱의 제3연대는 제4연대가 되었다.
이처럼 제3해병보병연대의 기원은 1831년으로 소급되며, 현재의 제2해병보병연대와 함께 '네 개의 오래된 연대' 중 가장 오래된 부대다. 로셸포르는 1838년부터 1946년까지 이 연대의 주둔지였다.
식민지 원정의 선봉
제3해병보병연대는 프랑스 식민지 제국 건설 원정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약한 부대 중 하나였다. 연대 산하 중대들은 다음 전역에 참전했다.
- 세네갈 전역 (1833~1835)
- 라플라타 원정 (1840, 마르틴 가르시아 섬 상륙)
- 오세아니아 작전 (1843~1846, 마르키즈 제도)
- 제1차 모로코 원정 (1844, 탕헤르 포격, 모가도르 점령)
- 제2차 라플라타 원정 (1850, 몬테비데오 탈환)
이후 더 큰 규모의 분견대가 여러 전장에서 명성을 쌓았다.
- 크림 전쟁 및 발트 원정 (1854)
- 청나라 원정 (1855~1860)
- 안남·코친차이나·캄보디아 전역 (1858~1868)
- 세네갈 전역 (1863)
푸른 사단과 바젤 전투
1870년, 연대는 드 바수아뉴(de Vassoigne) 장군의 유명한 '푸른 사단(Division Bleue)'에 속해 있었다. 이 사단은 9월 1일 바젤(Bazeilles) 전투에서 불멸의 이름을 남겼으며, 당시 연대 대열에는 훗날 프랑스 원수가 되는 갈리에니(Gallieni) 소위가 함께 싸우고 있었다.
1871년~1914년: 해외 원정의 시대
1871년부터 1914년까지 연대는 끊임없이 해외 원정에 투입되었다.
- 누벨칼레도니 (1878)
- 인도차이나 (1882~1885)
- 흑인 아프리카 (1882~1894)
- 포르모사(대만) (1884)
- 뉴헤브리디스 (1886)
- 디에고수아레즈 (1898)
- 크레타 (1898)
- 청나라 (1900)
- 모로코 (1911~1913)
1900년, 연대는 '제3식민지보병연대(3e R.I.C.)'로 명칭을 변경했다.
제1차 세계대전
1914년 8월, 식민지군단 소속으로 참전한 제3식민지보병연대는 벨기에 로시뇰(Rossignol) 전투에서 일부 궤멸되었다. 그러나 9월 빠르게 재편성되어 마른 전투에 참가했고, 군단 우익의 위기를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15년 2월에는 제1·제2대대가 제22식민지연대 대대와 함께 반격을 감행하여 보세주르(Beauséjour) 요새와 프뤼노(Pruneau) 진지를 독일군에게서 탈환했다.
1916년 초, 연대는 발칸 반도로 파견되었지만 처음부터 불운이 따랐다. 군단장, 연대 군기, 그리고 병력 2,000명을 실은 수송선이 이오니아해에서 어뢰 공격을 받아 겨우 장교 7명과 병사 500명만이 생존했다.
재편성된 제3식민지보병연대는 즉시 세르비아군과 함께 전투에 투입되었고, 1916년 12월 9일 미시치(Mišić) 보이보다(Vojvoda)의 찬사를 받는 전공으로 전군 포상명령에 올랐다. 또한 1918년 공세와 도브로폴예(Dobropolje) 승리에도 참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연대에 4,617명의 전사자라는 값비싼 대가를 안겨주었다.
전간기와 제2차 세계대전
1925년, 연대는 모로코에서 압드 엘 크림(Abd el-Krim) 토벌전에 투입되었다.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의 공세가 시작되자, 제3식민지보병연대는 제1식민지보병사단 소속으로 참전했다. 5월 14일부터 18일까지 보몽앙아르곤(Beaumont-en-Argonne)에서 독일 기갑부대를 상대로 성공적인 반격을 감행했고, 6월 9일과 10일에는 보포르앙아르곤(Beaufort-en-Argonne)에서 독일군 1개 사단의 공격을 격파하여 포로 300명을 확보했다.
이후 연대는 뫼즈 강을 따라 보주(Vosges) 방면으로 후퇴전을 벌였고, 병력이 대대 규모로 줄어든 상태에서도 적과 맞서 싸우던 중 6월 21일 무기를 내려놓아야 했다.
재건과 변천
휴전 후 해산되었던 제3식민지보병연대는 1944년 6월 도르도뉴(Dordogne) 지방에서 편성된 FFI(프랑스 내무군) 대대들을 기반으로 1944년 11월 13일 부활했다. 연대는 1945년 2월 1일 해산될 때까지 그라브 곶(Pointe Grave) 지역을 담당했다.
1945년 8월 1일 로셸포르에서 재창설된 연대는 1948년 파리 지방으로 이동했다. 1955년부터 1957년까지는 행진대대 형태로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 작전에 참가했다.
이 대대들은 다른 식민지 연대에 흡수되면서 1957년부터 제3연대의 부대마크를 달지 않게 되었다. 1957년 12월 31일 제3식민지보병연대는 제3식민지보병연대 교육센터로 개편되었고, 1958년 12월 1일에는 제3해병보병연대 교육부대(C.I.)가 되었다.
1963년 3월 1일, 연대는 기갑해병보병연대와 제9해병보병연대의 통합을 통해 반(Vannes)에서 재창설되었다.
현대의 제3해병보병연대
1969년 1월부터 '기계화' 부대로 전환되었고, 1970년부터 완전한 직업군 부대가 된 제3해병보병연대는 그 이후 모든 해외 작전에 참여하며 해병부대의 정신과 노하우가 필요한 세계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 1978년 — 아티(Ati) 전투 (차드)
- 1991년 — 다게(Daguet) 사단 소속으로 걸프전 참전
- 1995년 — 브르반야(Vrbanja) 다리 인근 시에라 빅터(Sierra Victor) 초소 탈환 작전에서 활약. 이 작전은 유엔 평화유지군(블루헬멧)이 적대 행위에 처음으로 무력으로 대응한 사례로, '소극적' 입장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병사 2명이 전사하고 17명이 부상당했다.
제3해병연대는 수단, 르완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알바니아 등에도 파병된 바 있다.
현재 모르비앙(Morbihan) 주 반(Vannes)에 주둔하는 연대는 병력 훈련을 위해 두 개의 추가 거점을 운영한다. 키비롱(Quiberon) 반도에 위치한 팡티에브르 요새(Fort Penthièvre)와 메콩(Meucon) 숲 속의 부르구앵(Bourguoin) 병영이다. 또한 제3해병연대는 최초로 완전히 직업군화된 연대이며, 현재 코트디부아르에 배치되어 임무를 수행 중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식민지 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