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클라크 공작 앙리-자크-기욤: 나폴레옹 제국의 전쟁장관

클라크(CLARKE)

앙리-자크-기욤 클라크(Henri-Jacques-Guillaume Clarke), 펠트르 공작(1765년 10월 17일 랑드르시 출생 ~ 1818년 10월 28일 뇌빌레라로슈 별세)

클라크 공작 앙리-자크-기욤: 나폴레옹 제국의 전쟁장관

군 입대와 혁명기의 흥망

1781년 파리 육군사관학교(École Militaire)의 생도로 입교한 클라크는 1790년 대위 계급으로 하사르 연대를 떠나 런던 대사관 무관 직위를 맡았습니다. 이후 다시 군대로 복귀하여 라인 방면군에서 복무했으며, 슈파이어 함락전과 나헤 강 도하지점 방어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보름스로의 후퇴 작전을 성공적으로 엄호했습니다.

1793년 5월 준장으로 승진했지만, 같은 해 10월 귀족 출신이라는 이유로 용의 인물로 지목되어 직무가 정지되었습니다. 실직 상태에 놓였던 그는 카르노의 요청으로 1795년 말 소장(Général de division)으로 복직할 수 있었습니다.

보나파르트와의 만남

클라크는 이탈리아로 파견되어 오스트리아와의 비밀 협상을 수행하는 한편 보나파르트를 감시하는 임무도 함께 맡았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보나파르트와 깊은 친분을 쌓게 되었고, 총재정부는 이를 문제 삼아 그를 소환하고 실직시키는 처분을 내렸습니다.

브뤼메르 18일 쿠데타 이후 상황은 반전되었습니다. 제1집정관 나폴레옹은 그를 전쟁창고(Dépôt de la Guerre) 국장으로 임명했고, 1801년 7월에는 에트루리아 왕국 주재 전권공사로 파견했습니다. 1804년에는 국무회의 참사관에 임명되었으며, 1805년부터 1806년까지는 황제 내각 비서관을 지냈습니다.

정복지의 총독

클라크는 나폴레옹을 따라 대육군(Grande Armée)에 합류하여 상·하오스트리아, 에르푸르트, 베를린, 프로이센의 총독을 역임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생헬레나 섬 유배 시절 클라크에 대해 "같은 해에 서로 다른 두 전역에서 빈과 베를린, 곧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두 군주국의 총독을 맡았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전쟁장관과 원수의 길

1806년 8월 9일, 클라크는 베르티에를 대신하여 전쟁장관에 임명되었고, 1814년 4월 3일 제국이 붕괴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는 휘네부르 백작(1808), 펠트르 공작(1809) 등 수많은 영예를 안았습니다.

부르봉 왕조에 귀순한 그는 프랑스 귀족원 의원이 되었고, 1815년 3월 11일부터 20일까지 술트를 대신해 전쟁장관직을 수행했습니다. 백일천하 기간에는 국왕을 따라 망명했다가 함께 귀환하여 1815년 9월 24일 다시 전쟁부 장관직을 인수했으며, 1816년 7월 3일 드디어 프랑스 원수로 서임되었습니다.

'펜의 사람'

클라크에 대해서는 "검의 사람 중에서 펜의 업적에 가장 많이 빚진 인물"이라는 신랄한 평가가 남아 있습니다. 그가 전장에서 싸우는 일보다 집무실에서 군사 행정을 처리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파리 개선문에 영원히 새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