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프랑스 혁명의 전환점, 10월의 사건들

혁명의 격화와 궁정의 첫 망명 물결

1789년 여름, 프랑스 혁명은 왕실 측근 대부분이 예상하지 못한 국면으로 급전직하했다. 이에 따라 첫 번째 궁정 망명 물결이 형성되었고, 이는 보복에 대한 공포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반역 행위와 이에 대한 진압이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는 악순환이 시작되었으며, 입헌 군주제에 머무르지 않고 완전한 혁명을 추구하는 세력들은 이러한 사회적 긴장 상태를 교묘하게 유지하고 부추겼다.

도화선이 된 베르사유 연회

그러던 중 베르사유에서 열린 한 연회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이 연회에서 왕당파 성향의 연대 병사들이 혁명의 상징인 삼색기 장식(트리콜로크)을 짓밟았다고 한다. 이 소문은 다시 한번 폭발 직전의 화약고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했다.

여성들의 베르사유 행진

10월 5일, 수많은 파리 시민 여성들이 빵을 구할 것과 왕가의 파리 귀환을 요구하며 베르사유로 행진했다. 다음 날인 10월 6일, 폭동 발생을 우려한 루이 16세는 마침내 굴복했고, 약 1,000명의 무리에게 호위를 받으며 그날 오후 튈르리 궁전에 도착했다.

혁명의 파리 시대 개막

왕가가 파리로 옮겨오자 제헌의회 역시 즉시 그 뒤를 따랐다. 이로써 프랑스 혁명은 본격적으로 '파리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