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근위 기마 엽병
근위 기마 엽병 연대의 탄생
이 연대는 상당 부분 보나파르트의 향도병(guide) 출신으로 구성되어, 그로부터 화려한 위사르(hussard)식 군복을 그대로 계승했다. 편제는 기마 척탄병 연대와 거의 동일했으나, 벨리트(velites)의 신장 기준만 약간 낮은 1.73m였다는 점이 달랐다. 1804년 7월 29일부 칙령에 따라 집정정부 근위대의 향도병 연대는 근위 기마 엽병 연대로 개칭되었으며, 2개 중대씩 4개 기병중대(squadron) 편제를 갖추었다.

- 근위 기마 엽병
황제 곁의 특별 임무
파리 육군사관학교(École Militaire)에 주둔한 이 엽병들은 황제가 머무는 궁전 어디든 그곳 경비를 위해 기병중대 하나를 파견하는 영광스러운 특권을 누렸다. 전장에서 이 중대의 기마 엽병들은 곧 나폴레옹의 친위 호위대 역할을 맡았다.
파르캥 대위(Capitaine Parquin)의 회고록(1803~1814)은 이에 관한 귀중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기마 엽병 중대는 황제 곁에서 특별한 근무를 수행했다. 중위 1명, 하사 1명, 상등병 2명, 엽병 22명, 그리고 군악기수 1명이 황제의 앞뒤를 따랐다. 분대장 1명과 엽병 4명—그중 한 명은 폐하의 서류 가방을, 또 한 명은 망원경을 들고—말을 몰아 황제 앞길을 열었다. 황제가 멈춰 서거나 말에서 내리면 엽병들은 즉시 뒤따라 내려 카빈총 끝에 총검을 장착한 뒤 방진 대형을 이루어 행진했고, 황제는 바로 그 중심에 있었다. 호위 소대장은 늘 폐하 곁을 따라다녔으며, 오직 뮈라 국왕과 노샤텔 공(베르티에 원수 본인)만이 그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황제가 숙소에 들면 이 장교는 황제의 방과 가장 가까운 방에 자리를 잡았다. 소대의 엽병들은 황제가 머무는 집 문 앞에서 말 고삐를 손에 쥔 채 대기했으며, 황제의 마굿간에서 온 말 한 필이 언제나 안장과 굴레를 갖춘 채 기수 2명에게 붙들려 준비되어 있었다. 이 임무를 맡은 호위 소대는 두 시간마다 교대되어, 밤낮 언제나 동일한 체계가 유지되었다.”
명예와 그에 걸맞은 보상
황제가 숙소를 나설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람은 바로 호위 장교였다. 최고의 명예와 절대적인 신뢰가 요구되는 자리였던 셈이다. 이 부대는 황제에 대한 헌신에 못지않은 대우를 받았다. 노장근위대(Old Guard) 각 연대의 중대마다 네 명의 엽병에게는 명예군단 십자 훈장과 종종 철왕관 훈장이 수여되었을 뿐 아니라 연금 250프랑이 지급되었고, 밀라노의 운하 혹은 나폴레옹산에 설정된 추가 연금까지 합쳐 연 500~800프랑에 이르는 수입을 누렸다.
청년근위대로의 확장
1813년 1월 10일, 연대는 250명 규모의 기병중대 여덟 개로 증편되었고, 같은 해 3월 6일에는 아홉 번째 중대가 편제에 추가되었다. 제5, 제6, 제7, 제8, 제9기병중대는 ‘청년근위대 중대’로 불렸으며, 기존 부대와 구별되는 별도의 군복을 착용했다.
엘바섬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은 새롭게 합류한 병력들이 보여준 뛰어난 자질에 만족하여, 그들에게 ‘청년근위대 제2기마엽병연대’라는 명칭을 하사하기도 했다.
전장에서의 활약
물론 엽병들의 역할이 앞서 말한 명예 근무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여러 차례 기마 척탄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도검을 하늘 높이 치켜든 채 씩씩한 갈색(bay)·밤색(chestnut) 말을 타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모습으로 전장에 이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