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신나강(Mosin-Nagant)은 '삼선(三線) 소총'이라고도 불리는 5발 탄창식 수동 볼트액션 군용 소총으로, 러시아 제국군을 시작으로 이후 소련과 동구권 여러 국가의 무장 세력에 의해 사용되었습니다.
1891년부터 1963년까지 다양한 형태로 현역에 운용되었으며, 7.62×54mm R 탄약을 최초로 채택한 소총이기도 합니다. 결국 SVD 드라구노프 저격소총으로 대체되며 그 역사를 마감했습니다.
모신나강의 역사
1877년부터 1878년까지 벌어진 러시아-튀르크 전쟁 당시 러시아군은 주로 단발식 베르단(Berdan) 소총으로 무장한 반면, 튀르크군은 윈체스터 연발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열세를 체감한 러시아 무기성은 1882년 여러 발의 탄약을 수납하는 탄창 방식의 신형 무기를 설계하기로 결정합니다. 베르단 소총 개조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마우저·리-메트포드·르벨 등 여러 설계안을 시험하기 위한 '탄창식 소총 실험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1889년, 세르게이 모신(Sergei Mosin)이라는 젊은 대위는 자신이 설계한 3선(러시아의 옛 길이 단위로, 3선은 약 0.3인치, 즉 7.62mm에 해당) 소총 프로젝트를 벨기에 출신 레옹 나간(Léon Nagant)의 3.5선 소총과 경쟁 형식으로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1891년 시험 기간이 끝났을 때 심사관들은 나간의 소총을 더 선호했습니다. 위원회의 채택 투표에서 모신 소총은 14표 대 10표를 받았지만,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장교들의 주도로 양측은 타협안에 도달하게 됩니다. 바로 모신의 소총 몸체에 나간의 급탄 시스템을 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공식 명칭 '1891년형 3선 소총(3 Line Rifle, Model 1891)'입니다.
양산은 1892년 툴라(Tula), 세스트로레츠크(Sestroretsk), 이제프스크(Izhevsk) 조병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공장의 생산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50만 정은 프랑스의 샤텔로 국립무기공장(Manufacture Nationale d'Armes de Châtellerault)에서 생산되었습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할 무렵에는 약 380만 정의 소총이 군대에 납품되었습니다.
1891년 채택부터 1910년 사이에는 여러 파생형과 개량이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는 조준기 변경, 강화된 노리쇠 장착(147그레인 탄두 채택에 따른 것), 방아쇠울 뒤쪽 강판 제거, 새로운 총열 교체, 롤러 거치대 설치 등이 포함됩니다.
1914년 러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생산의 단순화를 위해 M1891 기병형과 M1891 보병형 위주로 제한되었습니다. 무기 부족과 아직 성장 중인 산업계의 한계 속에서 러시아 정부는 미국의 레밍턴 암즈(Remington Arms)에 150만 정, 뉴잉글랜드 웨스팅하우스(New England Westinghouse)에 180만 정의 소총을 발주했습니다.
독일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노획한 대량의 모신나강은 전선 후방 지역과 독일 해군에서 사용되는 모습이 목격되었으며, 그중 상당수는 1920년대 핀란드에 판매되었습니다.
러시아 내전 기간 동안 기병형과 보병형 모두 극히 적은 수량이지만 계속 생산되었습니다. 붉은 군대의 승리 이후인 1924년, 소총을 현대화하기 위한 부서가 신설되었고, 이 소총은 이후 30년간 더 사용되게 됩니다. 이 부서는 원래 기병형 설계를 기반으로 한 M1891/30의 개발을 주도했습니다. 변경 사항으로는 평면 후방 조준기의 재도입, 차르 시절의 아르신(Arshin) 단위 대신 미터법으로 눈금을 재조정한 것, 총열을 5mm 단축한 것 등이 있습니다. 또한 이 신형을 위해 새로운 스프링식 총검이 설계되었습니다. 이 소총은 총검을 장착한 상태에서 발사하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는 탄환이 발사될 때 생성되는 고조파 진동 덕분에 명중률을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1945년경까지 약 174만 7,500정의 M1891/30이 생산되었습니다.
1930년대에는 정밀 사격용 버전(1932년)이 등장해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 저격수들이 사용했습니다. 특히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바실리 자이체프(Vasily Zaytsev)나 로자 샤니나(Roza Shanina) 같은 러시아 저격수들을 영웅으로 만든 무기이기도 합니다. 이 소총들은 견고함, 신뢰성, 정확성, 그리고 손쉬운 정비성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정밀 사격 모델은 특히 서구권 컬렉터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후 소련은 모신나강의 생산을 중단하고 SKS와 AK 시리즈로 점진적으로 교체해 나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신나강은 동구권과 세계 각지에서 수십 년간 더 사용되었으며, 특히 냉전기의 베트남, 한국,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철의 장막 전역에서 활약했습니다. 예비 무기로만 쓰인 것이 아니라 실전에도 투입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의 골동품 및 컬렉터 시장에서 대량의 모신나강이 유통되고 있는데, 사냥용으로도 믿음직하고 상당히 정확하면서 값이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 산업이 만들어낸 막대한 잉여 물자 덕분에 표준형 모델은 현재 80달러 안팎의 가격에 구할 수 있습니다. 저격수용 모델도 많이 있지만 찾기 어려운 데다 가격이 훨씬 비쌉니다. 모조 저격소총이나 진짜와 유사한 가격에 판매되는 단순 복제품도 시중에 돌고 있으므로, 사기를 피하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러시아·소련이 생산한 파생형
주요 사용국인 제정 러시아와 이후 공산주의 소련은 수많은 파생형을 생산했으며, 그중 일부는 해외에서 모방되거나 개량되었습니다.
제정 시대 (1893~1917)
M1891 보병 소총(러시아명: пехотная винтовка образца 1891-го года): 1891년부터 1930년까지 러시아와 붉은 군대의 주력 무기였습니다.
기병 소총(드라고온카)(러시아명: драгунская): 기병 장비용으로, M1891보다 64mm 짧고 0.4kg 가벼웠습니다.
코사크 소총(러시아명: казачья): 코사크 부대 장비용으로 제작되었으며, 기병형과 거의 같지만 총검 없이 사용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M1907 카빈: M1891보다 짧고 가벼워서(0.95kg 경량화) 기병, 공병, 포병에게 적합했습니다. 총검 장착이 불가능했으며, 최소한 1917년까지 제한된 수량이 생산되었습니다.
공산 시대 (1917~1950년경)
M1891/30(러시아명: винтовка образца 1891/30-го года, винтовка Мосина): 모신나강 중 가장 흔한 버전입니다.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생산되어 소련군 전체에 배급되었으며, 설계는 기병형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저격소총(스나이페르스카야): 최소 세 가지 변형이 존재하며, 서로 다른 3종류의 스코프와 장착 방식을 사용합니다. 모두 길게 늘어난 각진 볼트 손잡이가 특징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PU 스코프(3.5×22)와 측면 장착 방식을 사용하고, 또 하나는 더 정교한 PE 스코프를, 마지막은 PEM 스코프와 리시버 전면에 나사로 고정하는 전용 마운트를 사용합니다. 이 세 종류의 소총은 투박함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정확하여 동부 전선의 독일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힌 것으로 유명해, 현재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M1938 카빈: M1891/30의 설계를 기반으로 한 카빈으로, 1938년부터 1945년까지 현역으로 운용되었습니다(1945년 생산분은 매우 희귀). 기본적으로 총열을 단축한 M1891/30이며, 총검 장착이 불가능합니다.
M1944 소총: 1943년 말 실전 배치되어 1948년까지 생산되었습니다. M1938과 매우 유사하지만, 총검이 영구 고정된 점이 다릅니다. 이 총검은 430mm 길이의 사각형 칼날입니다. 이 소총은 소련뿐 아니라 여러 위성국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M1891/59x 카빈: 기존 M1891/30을 카빈 길이로 단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관련 정보는 많지 않으며, 수집가들은 이 명칭을 경계하며 캐나다 무기 수입업체가 상업적 목적으로 만든 모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외국 파생형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중 대량의 모신나강을 노획해 전장의 부대에 재배급했습니다. 일부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제식 탄약인 8×50mm R을 발사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고, 오스트리아는 모신용 대체 총검도 여러 종류 생산했습니다.
동유럽
러시아가 동유럽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만큼, 발칸 전쟁이나 냉전 시기에 수많은 모신나강이 병사들의 손에 들어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세르비아의 군대는 모두 20세기 동안 한때 모신나강을 사용했습니다. 이들 국가의 모신은 여러 차례 개조를 거쳤으며, 2000년대 초반까지도 훈련용 소총으로 활용되곤 했습니다. 헝가리는 상업적 목적으로 M44 카빈, 91-30 모델, PU 스코프 장착 91-30의 고품질 복제품을 생산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91-30을 기반으로 하되 매우 현대적인 스포츠용 무기 외관을 갖춘 VZ54 저격소총을 만들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1920~30년대 중국 공산 세력은 국민당 세력에 맞서기 위해 소련으로부터 모신나강을 지원받았습니다. 중국은 M1944를 '53식 카빈(Type 53)'이라는 명칭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생산에 쓰인 기계들은 1950년대 초 소련이 공급한 것입니다. 소련 모델과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1957년경 중국군 주력에서 물러난 뒤에도 1970년대 이후까지 지방 민병대에서 운용되었습니다.
핀란드
1917년 이전 핀란드는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으므로, 군부대는 러시아 M1891의 여러 모델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독립 이후 핀란드는 해외에서 많은 모신을 구입했는데, 대부분 제1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군에게서 노획한 오스트리아제와 독일제 소총이었습니다. 이 오래된 총들은 대개 개수를 거쳤는데, 핀란드군의 각인(SA)과 새 슬링 장착 정도의 소규모 작업부터, 새 마운트·조준기·방아쇠 그리고 직경 308mm(기존 311mm가 아닌)의 더 정밀한 총열로 완전히 재설계하는 대규모 작업까지 다양했습니다. 핀란드군과 시민위대(Civil Guard)는 프랑스제, 러시아제, 미국제 탄창을 활용해 여러 신형 모신나강을 설계·생산했습니다. 핀란드는 탄창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구입 또는 노획한 소총에서 떼어낸 것을 사용했습니다. 1939~1940년 겨울전쟁과 그 이후 1944년까지 핀란드는 적에게서 막대한 양의 모신을 확보했습니다. 핀란드는 스페인 내전의 잔여 소총과 나치 독일의 재고를 스페인에서 구입하기도 했으며, 이들 다수는 단순히 전선에 재배급되었습니다.
핀란드군은 소련과의 전쟁이 끝난 지 오래 지난 후에도 모신나강을 개수·재배급했습니다. 1970년대 초에 제작된 총열을 가진 M39가 훈련용으로 공급된 사례도 있습니다. 핀란드는 모신나강을 개조한 현대식 저격소총인 7.62 TaK85도 배급했습니다.
핀란드 모델은 다음 명칭으로 구분됩니다: M/91-M24 '로타 소총(Lotta rifle)', M27, M28, M28-30 '피스티코르바(Pystykorva)', M39 '웃코-페카(Ukko-Pekka)'. 참고로 핀란드의 M27, M28, M28-30, M39는 러시아의 사각형 총검과 달리 '나이프'형 총검을 장착했습니다.
핀란드제 모신나강은 정확성과 신뢰성으로 유명합니다. 역사상 최고의 저격수로 널리 평가받는 시모 해위해(Simo Häyhä)가 사용한 것도 M28 '피스티코르바'였습니다.
M39 모델은 인체공학적 권총 그립형 개머리판과 마감 품질, 정확성 면에서 가장 성공적인 모신으로 꼽힙니다. 조준기는 당시 최고급 소총(스위스 MQ 31)에 필적하며 모든 방향으로 정밀하게 조절 가능하고, 방아쇠 감각도 깔끔합니다. SAKO가 제작한 총열도 주목할 만합니다.
독일
독일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중 대량의 모신나강을 노획했으며, 이들은 8×57S 마우저 탄약으로 재구경 변경되는 등 다양한 개조를 받았습니다. 많은 수가 독일식 칼날 총검을 장착할 수 있는 어댑터 마운트를 갖추었습니다. 이 소총들은 후방 부대와 전쟁해군(Kriegsmarine)에 배급되었습니다. 나치 독일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중 수십만 정의 각종 소총을 노획했습니다.
저격 버전은 신뢰성이 높고 400미터 이상 거리에서 조정이 쉬워 더 정확했기 때문에 독일군이 성공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적에게 포획되기 전에 버려도 되는 무기였기에, 적 저격수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응보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일부는 핀란드에 판매되었고, 많은 수가 훈련, 경비 임무, 점령지 통치에 사용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동독 국경 경비에 모신나강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북한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은 한국전쟁 중 북한에 상당량의 모신나강을 공급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자급자족 정책 때문에 북한은 소총을 자체 생산했습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모신나강 저격소총이 1993년까지도 현역으로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폴란드
1920년대 폴란드는 약 77,000정의 모신나강을 8mm 마우저(8×57S)로 재구경 변경했습니다. 총열은 8mm로 재가공되어 23인치 길이로 단축되었고, 노리쇠와 탄창도 칼날형 탄창 사용과 원활한 급탄을 위해 개조되었습니다. 후방 조준기는 8×57S 탄도에 맞게 수정되었고, 개머리판은 단축된 뒤 페르쿤(Perkun)이 생산한 총검을 장착할 수 있는 마우저식 총검 거치대가 추가되었습니다. 이 소총들은 사소한 차이에 따라 Karabinek wz. 91/98/23 또는 wz. 91/98/26으로 불렸습니다.
wz. 91/98/25는 폴란드산 마우저가 보급될 때까지 정규군의 기병과 기마포병 부대에 장비되었으며, 1930년대 초에는 국경 초소와 국가방위군에 배급되었습니다.
이 소총들은 총신 후미에 작은 폴란드 독수리 문장과 구경이 새겨져 있고, 독수리와 일련번호는 탄창 좌측면과 노리쇠의 모든 부품에도 찍혀 있습니다. 이는 모신나강의 모든 변형 중에서도 독특하고 분명한 외관을 자랑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는 라돔(Radom) 조병창에서 대량의 M44 카빈(Kb. wz M48)을 생산했습니다. 이들 다수는 즉시 사용되지 않고 필요할 때까지 창고에 보관되었습니다. 이 모신나강들은 총탄창에 원 안에 새겨진 숫자 11로 식별할 수 있는데, 이것이 생산국을 나타내는 '국가 코드'입니다. 보관용으로 생산되었을 뿐 아니라 소련 무기 체계의 이상에 따라 제작되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모신나강 사례 중 하나로 꼽힙니다.
터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처럼 오스만 제국도 제1차 세계대전 중 많은 모신나강을 노획했습니다. 이후 독일의 지원으로 추가로 확보했거나, 러시아 내전 후 백군(White Army)이 피난해 올 때 입수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총들은 터키 독립전쟁과 그리스-터키 전쟁에서 그리스군과의 전투에 사용되었습니다.
기타 국가
미군과 동맹군은 월콩 게릴라와 북베트남군 병사의 손에서 모신나강 소총과 카빈을 상대로 싸워야 했습니다. 이 무기들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 소련,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공급된 것이었습니다.
상당수의 러시아제 M1944와 중국제 53식이 미제 M7 유탄발사기의 현지 복제품과 함께 유탄발사기로 사용되었고, PU 스코프를 단 M91/30 저격소총도 목격되었습니다. 많은 중국제·소련제 모신나강이 베트남 참전 용사들에 의해 전리품으로 미국에 반입되었습니다.
일부 소총은 미국 자체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1917년 차르가 퇴위하자 미국 정부는 뉴잉글랜드 웨스팅하우스와 레밍턴 암즈가 체결한 원래 계약을 취소했습니다. 잔여 물자를 볼셰비키에게 넘기는 대신, 수송 중이던 모든 소총을 미 육군이 매입했습니다. 영국에 남아 있던 소총들은 1918~1920년 북러시아로 파견된 미·영 원정군이 사용했고, 미국 내에 남은 소총들은 주로 미 육군 사격 훈련용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미 국가방위군이나 SATC·ROTC 부대 장비로 쓰였습니다. 이들은 'U.S. Rifle, 7.62 mm, Model of 1916'으로 명명되었습니다. 1917년에는 이 소총 50,000정이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시베리아의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보내져, 프랑스행 통로를 확보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지원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잔여 소총들은 잉여 물품으로 분류되어 전미소총협회(NRA) 회원들에게 한 정에 겨우 3.34달러에 판매되었습니다. 이것이 미국인들의 길고 깊은 모신나강 열풍의 시작이었습니다.
구 소련으로부터 군사 지원을 받았던 사실상 모든 국가가 한때 모신나강을 사용했습니다. 스페인 공화파는 스페인 내전 중 수만 정의 각종 모신을 구입했으며, 소련산 M91/30의 대부분이 스페인으로 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냉전기에는 소련의 영향권에 있던 중동 국가들, 즉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팔레스티나 게릴라가 다른 현대 무기와 함께 모신을 지원받았습니다.
모신나강은 1970~80년대 소련 점령기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헤딘의 손에 들린 채 전장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와 21세기 초에는 북부동맹(Northern Alliance) 세력이 사용했으며, 체첸 반군이 현대식 러시아 무기와 함께 사용하는 모습도 목격되었습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들은 모신나강 설계를 활용한 .22LR 구경 훈련용 소총을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폴란드의 WZ와 헝가리의 람파야르(Lampagyar)가 있습니다.
제원

사용국: 러시아 제국, 소련
분류: 소총, 카빈
탄약
핀란드 파생형: 7.62×54mm R, 7.62×53mm R
폴란드 파생형: 7.92mm 마우저
제조사: 툴라, 이즈마시, 세스트로레츠크, 샤텔로 무기공장, 레밍턴, 웨스팅하우스
사용 기간: 1891~1963년
중량 및 제원
중량(탄약 제외): 4kg(M91/30), 3.4kg(M38), 4.1kg(M44)
전장: 1,287mm(M91/30), 1,013mm(카빈), 1,433mm(M44)
총열 길이: 730mm(M91/30), 514mm(카빈)
기술 사양
작동 방식: 볼트액션
탄창 용량: 5발
조준기: 금속 가늠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