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알프레드 베르트랑: 탐험가이자 사진가로 살아낸 제네바의 삶

알프레드 베르트랑은 누구인가

알프레드 베르트랑(Alfred Bertrand)은 185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인물로, 그의 삶을 관통하는 세 가지 열정은 바로 여행, 사진, 그리고 칼뱅주의(Calvinism)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얽히며 그를 독특한 길로 이끌었는데, 바로 아프리카 대륙으로 향한 탐험과 선교 활동이었습니다.

베르트랑은 개신교 선교사들과 함께 아프리카로 떠난 탐험가였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이 '미개한 사람들'이라 불렀던 현지 주민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이끌고자 하는 소망이 그의 여행에 큰 동기로 작용했습니다.

여행과 사진, 그리고 수집의 결합

세상을 탐험하기 위해 떠난 여정 속에서 베르트랑은 자신의 세 가지 열정을 모두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세계 곳곳을 여행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진을 남기며 기억을 기록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단순히 사진만 촬영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지학적(ethnographic) 유물들을 유럽으로 가져왔다는 사실입니다. 이 컬렉션들은 현재 제네바 민족지학 박물관(Musée d'ethnographie de Genève)에 소장되어 있으며, 당시 아프리카 문화와 물질문명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시대의 시선이 담긴 사진들

그러나 베르트랑의 사진들을 오늘날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당시 탐험가들의 일반적인 경향처럼, 그 역시 '미지의 세계'를 의도적으로 더 이색적이고 낯설게 연출한 시각적 프레임 안에서 작업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이 사진들이 여행자에게 노출된 원주민들의 첫 모습을 정확하게 담아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베르트랑이 아프리카를 방문했던 시기는 대륙의 상당 부분이 아직 유럽인들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때였습니다. 따라서 이 낯선 대륙의 모습을 유럽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임무였고, 그 과정에서 사진은 정보 전달의 수단이자 동시에 특정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한편 베르트랑은 현지 주민들만이 아니라 자신과 동행했던 선교사들과 다른 탐험가들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덕분에 그의 작품은 당시 유럽의 탐험·선교 활동 전반을 조명하는 귀중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말년과 제네바에 남긴 유산

1909년, 알프레드 베르트랑은 1858년에 설립되어 지리학의 발전에 힘쓰고 있는 제네바 지리학회(Société de Géographie de Genève)의 회장으로 선출되며 학계에서도 인정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평생 제네바의 시민으로 살아온 그는 사후 자신의 재산 일부를 주(州)에 기증했는데, 그 결과 오늘날에도 제네바에는 베르트랑 공원(Parc Bertrand)이라는 이름의 공원이 남아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알프레드 베르트랑은 1924년, 자신이 태어난 고향 제네바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여행가, 사진가,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아낸 그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박물관의 소장품과 도시의 공원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