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릭: 휘체 왕국의 통치자
오스릭(Osric)은 7세기 앵글로색슨 소왕국인 휘체(Hwicce)를 다스린 군주입니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를 에안헤레(Eanhere)의 아들로 보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형제인 오셰레(Oshere)와 함께 공동으로 통치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베다의 기록에 나타난 왕
오스릭이 '왕'으로 불린 가장 중요한 근거는 역사가 베다 베네라빌리스의 저술입니다. 베다는 로마 유학에서 돌아온 오프포르(Oftfor) 주교가 자신의 관구로 향할 때, 오스릭이 그를 영내로 환영했다고 기록하면서 그를 왕으로 지칭합니다.
675~676년경의 토지 하사 헌장
오스릭은 675년에서 676년 사이로 추정되는 헌장에서도 왕으로 등장합니다. 이 문서에서 그는 베르타나(Bertana)라는 이름의 수녀원장에게 배스(Bath) 지방의 토지 100만텐테스(manentes)를 하사하여 그곳에 수도원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이 헌장은 12세기의 사본으로만 전해지며, 인디크션(indiction, 로식 연대 표기)이 잘못되어 있어 그 진위성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그러나 후대의 내용이 삽입되고 수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는 실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것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머시아 왕 에텔레드(Aethelred)가 공동 서명자로 참여했고, 캔터베리의 시어도어(Theodore)와 윌프리드(Wilfrid)를 포함한 여섯 명의 주교가 증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서명자 명단 자체는 후대에 편집된 흔적을 보입니다.
'왕'인가, '왕의 신하'인가 — 첼시 헌장의 논란
흥미롭게도 또 다른 헌장에서는 오스릭의 지위가 다르게 묘사됩니다. 679년경 첼시(Chelsea)에 주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이 문제의 문서에서, 머시아 왕 에텔레드는 오스릭과 그의 형제 오스월드(Oswald)에게 토지를 하사하는데, 두 사람은 단순히 왕의 ministri(테인(thegn)에 해당하는 신하)로만 호칭됩니다.
이 헌장에 따르면 오스월드는 우스터셔의 퍼셔(Pershore)에서 300하이드(hide)의 토지를 받았고, 오스릭 역시 글로스터(Gloucester)에서 같은 규모의 토지를 받았습니다. 단, 조건은 그 땅에 수도원을 건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글로스터와의 깊은 인연
이 문서는 9세기까지 소급될 수 있는 필사본으로 글로스터의 기록 보관소에 보존되어 있으며, 원래 이 교회의 창건 연혁을 담은 책을 편찬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통해 오스릭과 글로스터 사이에 분명히 긴밀한 관계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역 전승에 따르면 오스릭은 글로스터의 성 베드로 혼합수도원(mixed abbey)을 창건한 인물이며, 자신의 자매인 키네부르가(Cyneburga)를 그곳의 초대 수녀원장으로 임명했다고 전해집니다.
혼란스러운 전승과 동명이인 문제
그러나 이 전승은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띱니다. 잉글랜드 성인전(聖人傳) 전통의 많은 부분에서 오스릭은 데이라(Deira)의 짧은 재위를 지낸 동명이인 왕과 혼동되어 왔습니다. 이 때문에 글로스터의 수녀원장 키네부르가는 캐스터(Castor) 수도원을 세운 또 다른 키네부르가의 딸로 잘못 여겨지기도 합니다.
더욱이 글로스터 지역 내부에서조차 이 수녀원장의 행적은 시간이 지나며 각종 지역 전설이 덧씌워져 점점 더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이 되었습니다.
최후와 매장
어떤 경로를 거쳤든, 오스릭은 글로스터에서 생을 마감했거나 최소한 그곳에 안장되었습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유해는 훗날 대성당으로 이장되었으며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