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폰 클라우제비츠: 근대 전략 이론의 아버지
칼 필립 고트프리트(또는 고트리프) 폰 클라우제비츠(Carl Philip Gottfried von Clausewitz, 1780년 6월 1일 마그데부르크 ~ 1831년 11월 16일 브레슬라우)는 프로이센의 군인이자 군사 이론가입니다. 그의 저서 『전쟁론(Vom Kriege)』은 오늘날까지도 전략 연구의 필독서로 꼽히며, 서양 군사사상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출생과 가문
클라우제비츠는 실레시아(상실레시아) 출신의 중산층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문은 귀족 혈통을 자칭했지만, 아버지는 7년전쟁 당시 장교 임관의 기회를 얻었음에도 전쟁이 끝난 뒤 미천한 출신 배경을 이유로 직위에서 해임되었습니다. 클라우제비츠 가문의 귀족 신분은 1827년에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초기 군 경력
1792년, 열두 살의 나이에 포츠담 제34보병연대의 기수(Fahnenjunker)로 입대하며 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전쟁기 제1차 대프랑스 동맹군의 원정에 참여했으며, 1793년 마인츠 공방전에서 첫 실전을 경험했습니다. 1795년에는 노이루핀 주둔지로 옮겨 소위로 진급했습니다.
주둔지 생활 동안 그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 걸친 독학에 몰두했습니다. 1801년 10월에는 베를린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는데, 당시 학교장은 훗날 그의 스승이자 후원자가 되는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였습니다. 1804년에는 동기들 가운데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프로이센 왕자 아우구스트의 부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포로 생활과 프로이센군 개혁
1806년 전역에 참전한 그는 10월 14일 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포로가 되었고,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약 2년간 포로 생활을 보냈습니다.
1808년 석방된 뒤, 1809년부터는 샤른호르스트를 보좌해 프로이센군 재건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1810년에는 소령으로 진급하고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임명되었으며, 훗날 빌헬름 1세가 되는 프로이센 왕태자의 군사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같은 시기 마리 폰 브륄 백작녀(Marie Gräfin von Brühl)와 결혼하여 평생의 지적 동반자를 얻었습니다.
러시아군 복무와 워털루 전역
1812년 나폴레옹에 대한 군사 협력을 거부한 그는 프로이센을 떠나 러시아 제국군에 합류했습니다. 떠나기 전 왕태자에게 저서 『전쟁의 원칙』을 남겼습니다. 러시아 원정에 참전한 그는 특히 요르크(Yorck) 장군의 군단을 비롯한 프로이센 부대들이 프랑스에 맞서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블뤼허 참모부의 러시아 측 연락 장교, 독일-러시아 군단 참모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1814년 대령 계급으로 프로이센군에 복귀했으며, 1815년 워털루 전역에서는 틸만(Thielmann) 장군 휘하 프로이센 제3군단의 참모장으로 참전했습니다.
말년과 『전쟁론』 집필
1816년부터 1818년까지 코블렌츠에서 그나이제나우(Gneisenau) 장군의 참모부에서 근무했습니다. 1818년에는 소장으로 진급하고 베를린 육군사관학교 행정 국장으로 임명되어 1830년까지 재직했습니다. 교육 업무에서 물러난 이 시기를 그는 연구와 저술에 바치며 『전쟁론』을 집필했습니다. 1830년에는 폴란드 혁명을 감시·억제하기 위해 편성된 그나이제나우 군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831년 11월 16일, 전장에서 감염된 콜레라로 인해 브레슬라우(현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832년부터 1837년까지 그의 아내 마리가 유고를 정리하여 『전쟁론』을 포함한 저작들을 출판했습니다.
전략 분야의 보편적 고전
클라우제비츠의 저술은 근대 전략 이론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으며, 지금도 때로는 상충하는 해석과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첫째, 그의 저작은 원래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쓰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표저 『전쟁론』은 산발적인 원고와 노트를 모은 편집물에 가깝지만, 이러한 미완결성에도 불구하고 전략 분야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포괄적인 저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
둘째, 그가 다룬 개념들은 단순한 군사 영역을 넘어 정치학, 경제학 등 수많은 인문사회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셋째, 그의 이론은 본질적으로 기술적(descriptive)입니다. 그는 자신의 전역 경험에서 얻은 해법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독자에게 전략의 복잡성을 파악하고 불확실성을 관리할 수 있는 강력한 개념적·변증법적 도구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그의 저작은 2세기가 넘는 세월을 건너 여전히 유효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저작을 둘러싼 논쟁은 주로 그가 전개한 개념들의 해석 차이, 그리고 각 독자가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특정 개념에 부여한 중요성에서 비롯됩니다. 그렇기에 웰링턴 공작, 몰트케(구), B.H. 리델 하트, J.F.C. 풀러, 레닌, 히틀러, 마오쩌둥, 패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헨리 키신저, 레몽 아롱 등 이처럼 다양한 인물들이 그를 필수적인 지적 참조점으로 여겼습니다.
주요 개념
- 전쟁의 정의
- 중력 중심지(center of gravity)
- 결정적 지점(decisive points)
- 작전선(lines of operation)
- 전쟁의 안개(fog of war)
- 마찰(friction)
- 우연성(contingency) — 전쟁의 본질적 특성
- 역사 교훈의 상대적 타당성
- 전쟁과 정치의 불가분 관계
- 전략적 추론에 확률 개념 도입
- 공세에 대한 방어의 상대적 우위
- 제한전에서 총력전까지의 단계 구분
- 군사 공학의 본질
명언
전쟁은 무제한의 폭력 행사이다.
전쟁이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단순한 연속일 뿐이다.
전쟁은 적이 우리의 의지를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폭력 행위이다.
전쟁은 결코 고립된 행위가 아니다.
전쟁과 그 결과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전쟁 행위의 목적은 적을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다.
전쟁처럼 위험한 일에서 최악의 실수는 선의에서 비롯된다.
전쟁은 결코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으며, 그 확산 역시 순식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쟁은 위험의 영역이므로 용기는 무인(武人)의 첫 번째 미덕이다.
정복자는 언제나 평화를 사랑한다. 그는 조용히 우리 나라에 들어오기를 원한다. — 이 구절은 레닌을 크게 만족시켰고, 그는 자신의 저본에 "장대하다, 아하!"라는 주석을 달았다.
전쟁은 카멜레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