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패 속에 남겨진 영웅의 발자국
압도적인 패배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병사들은 그 패배에 어울리지 않는 영웅적인 행보를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라이히스호펜(Reichshoffen)에서 벌어진 흉갑기병(Cuirassiers)의 돌격은 역사에 길이 남았으며, 오늘날까지 프랑스군을 상징하는 위업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1870년 8월 6일, 베르트(Woerth) 전투가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마크마옹(Mac-Mahon) 군단의 중심부는 괴멸 직전까지 몰려 있었고, 우익을 담당한 라르티그(Lartigue) 사단 역시 적에게 포위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길은 오직 희생뿐이었습니다.
병상에서 내려진 명령
라르티그 장군은 포위를 늦춰줄 병력을 어디서든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마크마옹 원수가 미셸(Michel) 중기병 여단을 자신의 지휘 아래 두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즉시 단데니(d'Andigné) 대령을 제1군단 기병대 지휘관 뒤엠(Duhesme) 소장에게 보내 흉갑기병 연대 하나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뒤엠 장군은 중병으로 누워 있는 신세였습니다. 이 작전 계획을 들은 그는 전율했고, 단데니 대령을 자신 곁으로 불러 말했습니다.
"하늘의 이름으로 부탁한다. 라르티그 장군에게 미친 짓을 하려 든다고 전해 다오. 내 흉갑기병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이 될 테니."
이에 장교는 답했습니다. "장군님, 그것 말고는 사단의 잔존 병력을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며 덧붙였습니다. "게다가… 그런 참화를 기병이 감히 무관심하게 지켜보기만 한다면, 명예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뒤엠 장군은 모든 것을 깨닫고 더 이상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눈물 겨운 목소리로 그는 같은 말만 되뇌었습니다.
"가여운 나의 흉갑기병들아… 가여운 나의 흉갑기병들아…"
그리고 열로 떨리는 손으로 조용히 단데니 대령의 손을 꽉 쥐었습니다.
아홉 개 중대의 결전 돌격
요청된 것은 연대 하나였지만, 여단에 속한 두 개 연대—제8흉갑기병연대와 제9흉갑기병연대—는 곧바로 전투 준비에 나섰습니다. 여기에 제6창기병연대(Lancers) 두 개 중대도 합류했습니다. 어느 대위는 검을 뽑아 들며 병사들에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동료인 흉갑기병들을 혼자 두고 갈 수 없다!"
이 한마디에 모든 병력이 하나로 뭉쳤습니다. 이렇게 편성된 기병대는 총 아홉 개 중대로, 에버바흐(Eberbach) 계곡에 두 열의 진형을 갖추었습니다. 선두에는 제8흉갑기병연대가, 그 뒤를 제9연대와 창기병들이 따랐습니다. 라르티그 장군이 지정한 돌격 목표는 모스브론(Morsbronn)에서 행군을 시작하던 슈코프(Schkopp) 장군의 부대였습니다.
지형 자체가 적이었다
크림 전쟁의 발라클라바 경기병 여단 돌격 이후, 보병의 화망이 기병 돌격을 분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된 바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라이히스호펜처럼 장애물투성이의 지형이나 마을 골목으로 돌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찰은 생략되었고, 결국 남은 것은 영웅심뿐이었습니다. 그 지대 자체도 극도로 불리했습니다. 낮게 처밀린 가지를 가진 나무들이 울창했고, 도랑이 도처에 파여 있었으며, 땅바닥에 잘린 나무 그루터기가 널려 있었습니다.
모스브론의 참극
제8흉갑기병연대는 계곡의 은폐 위치에서 진형을 갖춘 뒤, 에버바흐 경사면을 오르는 순간 보병의 화망에 휩싸였습니다. 포도원과 과수원, 홉 밭에 숨어든 적들이 일제히 사격을 퍼부은 것입니다. 그러나 탄환 속에서도 돌격은 멈추지 않았고, 격류처럼 모스브론 마을로 쏟아져 들어갔습니다.
마을에 진입하자 연대는 흩어졌습니다. 일부 병력은 좌우로 나뉘어 보병에게 덤덤했지만, 대다수는 마을의 길고 좁은 골목으로 돌진했습니다. 이미 집들은 적에게 점령된 상태였고, 창문과 지붕 위에서는 근접 사격이 쏟아졌습니다. 골목 끝에는 즉석 바리케이드까지 세워져 있었습니다. 진로가 막힌 불행한 기병들은 되돌아섰고, 쓰러진 말들과 부상당한 동료들의 시신 위로 길을 뚫으며 후퇴해야 했습니다. 목격자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모든 창문에서 총이 재장전되고 있었고, 탄환이 가슴받이에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폭풍우 치는 날 창유리에 쏟아지는 우박 소리와 같았다."

간신히 빠져나온 기병들은 진형을 다시 잡아 재차 돌격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기수들은 사격에 하나둘 쓰러졌고, 말들은 도랑에 걸리거나 홉 밭을 연결하는 덩굴 울타리에 엉켜 넘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은 프로이센 경기병(후사르) 분견대와 마주쳤습니다. 적들은 총을 쏘았지만, 이 고결한 잔존 병력 앞에서는 오히려 위축되어, 이미 크게 피해를 입은 그 용감한 부대에게 감히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같은 운명을 받아들인 제9연대
제9흉갑기병연대는 창기병들과 함께 제8연대 동료들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같은 영웅심에는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 또한 모스브론 거리로 빨려 들어가 마을 안에서 헤매다 빠져나오지 못했고, 거의 전원이 적의 포로가 되거나 전장에 남았습니다.
아홉 개 중대가 낸 전사·부상·포로·실종 손실은 약 800명에 달했고, 장교 37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습니다.
역사에 남은 이름
15분쯤 지난 뒤, 평야 저편과 언덕 경사면 곳곳에서 흩어진 흉갑기병과 창기병 무리들이, 마치 우연히 전장 끝자락에 버려진 듯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긴 우회 끝에라도 아군 진선으로 돌아가려 애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프랑스 그 자체만큼 오래 이어질 전통 속에서 '라이히스호펜의 흉갑기병', 혹은 더 정확한 이름인 '모스브론의 흉갑기병'으로 추앙받을 이들의 마지막 잔존 병력이었습니다.
P. 드 라 코르스(P. de L A COR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