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마 전투(Battle of the Alma)는 1854년 9월 20일, 크림 전쟁 중 알마 강변에서 프랑스·영국·오스만(터키)·피에몬테 연합군과 러시아 제국군이 격돌한 전투입니다. 연합군이 승리하며 세바스토폴로 가는 길을 열었고, 이 전투는 크림 전쟁 최초의 대규모 육상 교전으로 평가됩니다.
전투 개요
일자: 1854년 9월 20일
장소: 크림반도 알마 강변
결과: 프랑스-영국-터키-피에몬테 연합군의 승리
교전 세력 및 지휘관
연합군: 영국·프랑스·터키·피에몬테
지휘관 — 프랑스의 생아르노(Marshall de Saint-Arnaud) 장군, 영국의 래글런 경(Lord Raglan)
러시아군: 알렉산드르 멘시코프(Alexander Menshikov) 공작
양측 병력
영국군: 보병 26,000명, 기병 1,000명, 야포 60문
프랑스군: 보병 28,000명, 야포 72문
터키군: 보병 7,000명
러시아군: 보병 33,000명, 기병 3,400명, 야포 120문
피해 규모
연합군: 영국 2,002명, 프랑스 1,340명 등 총 3,342명
러시아군: 약 5,709명
배경
연합군은 1854년 9월 14일 크림반도의 예우파토리야(Eupatoria)에 병력을 상륙시켰습니다. 세바스토폴에서 즉시 소식을 접한 멘시코프 공작은 크림 곳곳에 흩어져 있던 부대를 최대한 규합했습니다. 그리고 자군이 상대보다 높은 지대를 점할 수 있는 알마 강변에서 결전을 벌이기로 결심합니다.
멘시코프가 이끈 병력은 총 4만 명으로, 42개 반 대대, 기병 16개 중대, 코사크 소트니아 11개, 그리고 야포 100여 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연합군 진형에서는 영국군이 좌익을, 프랑스군이 중앙과 우익을 담당했고, 함대는 해안에서 화력 지원을 준비했습니다.
9월 19일 오후에는 러시아군이 영국군의 저항을 '시험'하는 성격의 소규모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연합군은 아직 완전히 집결하지 못한 상태였고, 일부 영국 부대는 그날 밤에야 도착했습니다.
전투 경과
프랑스군이 새벽 전에 행군을 개시한 반면, 영국군은 곧바로 뒤처지면서 작전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결정적 기동은 부스케(Bousquet) 사단 소속 제3주아브(Zouave) 연대가 감행했습니다. 함대의 함포 지원을 받으며 절벽을 오른 주아브 병사들은 러시아군의 포병 진지를 탈취하고, 그 포를 멘시코프의 부대를 향해 되돌려 쏘았습니다. 최전선에 내몰린 그들은 증원이 도착할 때까지 적 보병의 파도 같은 공격을 버텨내야 했습니다.
러시아군의 포화 아래 나머지 프랑스군은 고전 끝에 부르리우크(Bourliouk) 마을 인근에서 진격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칸로베르(Canrobert) 장군의 포병이 절벽 아래까지 도달했지만, 경사가 너무 가팔라 포를 진지로 끌어올려 주아브를 지원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군 좌익에서는 영국군이 뒤늦게 따라잡고 있었으나, 조지 브라운(Sir George Brown) 경의 기동 실수로 영국군 대열이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러시아군은 이 혼란을 틈타 돌격했지만 영국 소총병들에게 격퇴되었습니다. 이후 다소 혼란스러운 교전이 이어졌습니다. 주아브의 활동이 자신에게 치명적일 것을 우려한 멘시코프는 지휘부와 함께 프랑스군 방면으로 이동했고, 외곽 위치에서는 영국군 정면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역공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단'급 병력과 맞선다고 믿었던 러시아 보병은 실제로는 대대와 산개병과 마주쳤고, 영국군 주력은 이미 그들의 측방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모순된 명령에도 불구하고 영국 부대의 지휘관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을 궤멸시켰습니다.
영국군 전선의 최좌익에서는 단 3개 대대, 즉 2천~3천 명이 전투에 아직 투입되지 않은 신예 병력 1만 명이 넘는 러시아군과 맞섰습니다. 거의 2km에 걸쳐 두 열로 얇게 펼쳐진 영국군은 사격하며 전진하는, 당시 매우 어려운 기동을 구사했습니다. 전장의 화약 연기와 혼란 속에서 러시아군은 마주한 적의 병력을 과대평가했고, 결국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우익에서는 칸로베르 장군이 마침내 포를 절벽 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에 주아브는 돌격을 개시해 그때까지 러시아군 사령부가 점거하고 있던 최고 지점을 확보했습니다.
전 전선에서 후퇴를 거듭하던 러시아군에게는 이를 만회할 예비대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전투는 러시아군의 완패로 끝났습니다.
여파와 기념
이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함을 기리기 위해 조각가 조르주 디볼트(Georges Diebolt)가 제작한 '알마교의 주아브(Zouave du pont de l'Alma)' 상이 파리에 세워졌습니다. 이 동상은 이후 파리의 홍수 수위를 알리는 랜드마크로도 유명해졌습니다. 또한 캐나다 퀘벡주의 알마(Alma) 시 역시 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