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와르 번왕국이 키운 좌파 지도자, 닥터 아슈라프
인도 국민회의에 참여했던 좌파 성향의 지도자 닥터 아슈라프는 학생 시절 알와르 번왕국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으며 교육을 받았다. 그는 메오(Meo) 무슬림 출신으로, 국민회의 소속으로 활동하면서도 줄곧 메오 공동체의 정치를 펼쳤다. 특히 그는 별도의 '메와스탄(Mevasthan)'이라는 독립 국가를 세워 파키스탄에 합류시키자는 도발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결국 1947년 3월경에는 메와스탄을 둘러싼 분쟁이 격화되면서 이 지역 전체의 질서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구르가온에서 벌어진 약탈과 행정부의 방관
무슬림 연맹 소속 활동가들은 구르가온(Gurgaon)에서 대대적인 약탈을 자행했다. 그러나 그곳의 부수장(Deputy Commissioner)은 폭력배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발라브바이 파텔(Vallabhbhai Patel)이 직접 구르가온을 찾아 부수장에게 상황을 물었지만, 부수장은 끝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파텔은 얼굴에 먹칠을 한 듯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구르가온 지구에는 메오 카스트에 속한 무슬림들이 다수 정착해 있었다.
마을마다 반란, 힌두 마을들의 불바다
1947년 초부터 같은 해 7월까지 구르가온 지구의 거의 모든 마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현지의 구자르(Gujar)족과 자트(Jat)족은 무슬림들에게 맞섰지만, 그럼에도 수백 개의 힌두 마을이 불타 없어졌고, 구자르·아히르(Ahir)·자트 주민들은 피난처를 찾아 델리와 구르가온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의 계획은 명확했다. 델리와 구르가온에서 힌두교도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무슬림 연맹의 통치 아래 두는 것이었다.
밀수된 무기와 저지된 계획
이를 위해 무기들이 밀수되어 반입되기도 했다. 무슬림 연맹의 이 계획은 델리의 힌두 청년들과, 구르가온 지구에 인접해 있던 알와르 번왕국의 노력으로 부분적으로 좌절되었다. 알와르의 군주는 힌두 사바(Hindu Sabha)의 지도자를 자신의 나라 총리로 임명했는데, 이 번왕국의 적극적인 대응 덕분에 그들은 계획을 끝내 완전히 실현하지 못했다.
간디의 동료가 기록한 음모의 증거
간디의 동료였던 마스터 피아랄랄(Master Pyaare Lal)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무슬림 연맹과 그 동맹 세력의 음모 근원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었다. 전쟁 중 버마에서 브리게디어 윙게이트(Brigadier Wingate) 휘하에서 일본군 배후 작전을 수행하던 일부 군 장교들이 선동 활동을 벌이다 붙잡혔다. 그들이 어떻게 인도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무기를 인도로 불법 반입하는 작업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인도군의 영국 장교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었다."
"이것은 공공연하게도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였다. 수천 정의 스텐건(Sten gun)을 포함한 불법 무기 은닉 처소가 나그푸르, 잘바푸르, 칸푸르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국민회의 고위 지도부는 이러한 조직들의 서면 증거를 입수했고, 영국 정부의 정치부(Political Department) 역시 이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부서는 일부 번왕들과 마하라자들과 공모하여 인도의 통일을 흔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또한 각지의 번왕국을 통해 인도 전역으로 무기를 보내 'D-Day'를 맞이하겠다는 체계적인 계획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도 확보되었다."
모스크에 숨겨진 무기들
모스크에서도 다량의 무기가 집결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는 물론 무슬림 연맹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준비물이었다. 잘바푸르, 나그푸르 등 도시에서 발견된 대규모 무기고는 아마도 무슬림 연맹이 꾸민 거대한 음모의 산물일 것이다. 다만 이러한 무기 은닉처를 조성하는 데 번왕들이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는 오늘날까지도 정확히 밝혀지기 어렵다.
임시정부 수립 이후에도 계속된 음모
핵심적인 사실은 이것이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인도 전역에서 무슬림 연맹의 음모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그 목표는 인도 전체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도의 많은 지역을 파키스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