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9세기 러시아 문학: 고전주의에서 황금기까지

나는 나의 미녀를 잊고 싶다.
마샤, 너를 피해야 한다.
사랑에 나는 반항적이며,
자유를 더 사랑한다.
(…)
내 불행을 아는 마샤여,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
그래, 내 고통은 남다르다.
내가 너의 포로이기 때문이다. [1]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장엄한 송가의 작가인 가브릴 데르자빈은 18세기 말 고전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문학 경력의 후반부로 갈수록 감성적인 글쓰기, 이른바 전낭만주의적 경향으로 기울어갔습니다. 감정을 찬양하는 이러한 흐름은 곧 소위 감상주의 작가들로 이어졌는데, 니콜라이 카람진이 그 시조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언어 개혁에 찬성했던 카람진은 러시아 문학의 고전적 규범으로부터의 탈피를 선언했습니다.

감상주의 운동은 빠르게 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한 사조로 발전했으며, 1810년부터 1840년 사이에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바로 낭만주의입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이 운동은 러시아에서 시인이자 산문가인 알렉산드르 푸시킨과 함께 절정에 달했습니다. 푸시킨은 작가로서의 자유를 자랑스럽게 내세웠습니다. 그는 허구와 역사를 융합하고, 끊임없는 검열 속에서도 권력과 자유 같은 주제를 과감히 다루며, 어느덧 근대 산문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푸시킨이 낭만주의 작품으로 성공과 명성을 누렸다 해도, 그는 이 문학 사조를 넘어서서 점차 보다 사실주의적인 글쓰기로 방향을 전환해 갔습니다.

우리 동화에는 자비로운 요정이 종종 강꼬치고기의 모습으로 나타나, 온화하고 해롭지 않은 사람, 다시 말해 모두에게 박해받는 게으름뱅이를 아무 이유 없이 후하게 대해주곤 합니다. [2]

자연파의 등장

자연파는 러시아 산문의 첫 번째 위대한 시기를 연 운동으로, 투르게네프, 네크라소프, 그리고 유명한 도스토옙스키와 같이 진정으로 헌신적인 작가들이 이끌었습니다. 1840년대에 일어난 이 투쟁적인 운동은 낭만주의 문학을 계승하면서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프랑스의 스탕달에게 소설이 거울이었던 것처럼, 현실주의의 영향 아래 소설은 세계의 이상화된 면모보다는 그 기묘함과 결함을 비추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니콜라이 고골은 환상적인 단편 「외투」(1843)에서 하급 관료들의 지루해 보이는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곤차로프는 러시아의 변화를 서술하면서 특히 '마지막 낭만주의자'로서 더 이상 낭만주의적이지 않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을 부각시켰습니다. 바로 오블로모프입니다. 1859년에 출간된 동명의 소설 『오블로모프』는 1855년에서 1865년 사이에 형성된 '잉여인(쓸데없는 사람)' 개념의 완벽한 표현입니다. 구체적으로 노동하며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보다 철학하고 꿈꾸기에 급급한 이들에게 붙여진 별명이었습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처럼 울면서 신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거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생각하고 사물을 진실한 빛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탁합니다, 만약 내일 당신이 병원에 실려 간다면 어떻게 됩니까? 저쪽 사람은 미치고 폐병에 걸려 곧 죽을 것입니다. 그럼 아이들은요? 폴레치카는 망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어머니들이 거지 행세를 시키는 아이들을 보신 적 없습니까? 저는 그 어머니들이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알아냈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같지 않습니다. 거기서 일곱 살배기 아이가 악하고 도둑질을 합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구세주의 형상입니다. [3]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

극심한 세대 갈등 속에서 투르게네프를 비롯한 작가들은 농민의 언어를 작품에 도입하고, 사회 계층을 가르는 경계를 허물어 갔습니다. 새로운 세대는 아버지 세대의 경직되고 낡은 사상에 항의하기 위해 하나로 뭉쳤습니다. 작가들은 이러한 충돌을 기록했는데, 대표적으로 1862년에 출간된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를 이끈 것은 무엇보다 두 작가였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국경을 넘어 울려 퍼졌습니다. 사실주의가 깃든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격변하는 러시아에서 진정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인간 공통의 것을 보편적 차원에서 표현했으며, 특히 실존적 위기와 죽음을 하나의 통과 의례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그려냈습니다. 자연파의 '결실'인 도스토옙스키는 가족을 위해 몸을 파는 창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처럼 사회의 희생자가 된 인물들을 통해 세상의 비참함을 조명했습니다.

이 두 작가의 세계적 명성은 러시아가 독자적인 문학을 가졌음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비밀은 나 혼자만의 것이며, 내 말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 새로운 감정은 내 생각과 달리 나를 변화시키지도, 눈부시게 하지도, 행복하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에 놀람도 기쁨도 없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이 감정은 고통을 통해 내 영혼에 스며들어 지금은 그곳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으며, 내가 어떤 이름을 붙이려 해도 그것은 믿음입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