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프 전쟁의 배경
리프 전쟁은 모로코 북부에 위치한 리프(Rif) 산맥 일대의 부족들과, 모로코 술탄과의 보호조약에 따라 개입한 프랑스군 및 스페인군 사이에 벌어진 식민지 전쟁입니다.
리프 부족들은 '암가르(Amghar)'라고 불리는 마을 공화국의 수장들에게 이끌렸으며, 관습법이 종교법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스페인군의 패배와 리프 공화국의 탄생
1921년 7월 20일, 스페인군은 반란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진격했지만 오히려 참패를 당했습니다. 이 승리를 발판 삼아 압델크림 엘 카타비(Abdelkrim El Khattabi), 흔히 '압드 엘 크림'으로 알려진 인물의 대담한 구상이 본격적으로 추진됩니다. 그는 각 부족의 족장들을 규합하여 모로코 왕실의 권위를 거부했고, 1922년 2월 1일 '리프 부족 연방 공화국'을 선포했습니다. 압드 엘 크림은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프랑스의 개입과 전세의 변화
이후 스페인과의 전쟁이 이어졌고, 스페인군은 연안 지역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24년에는 스페인의 지배가 세우타(Ceuta), 멜리야(Melilla), 아시라(Asilah), 라라셰(Larache) 등 몇몇 거점에 국한될 정도로 밀려났습니다.
저항이 모로코 전역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한 프랑스가 스페인을 지원하기 위해 개입합니다. 프랑스군은 전진 기지를 설치했고, 이는 곧 리프 부족군과의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리프군은 1924년 겨울부터 1925년 봄까지 페즈(Fez) 방면으로 공세를 펼쳤으나, 프랑스군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리요테(Lyautey) 장군이 승리를 거두었으며, 놀랭(Naulin) 사령관은 리프 부족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습니다.
협상 결렬과 전쟁의 종결
1925년 가을, 협상은 리프 민족주의자들의 강경한 요구로 인해 결렬되었습니다. 이후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은 리프 부족들을 밀어붙였고, 전쟁은 종결을 향해 치닫게 됩니다.
압드 엘 크림의 최후
패배 후 압드 엘 크림은 레유니옹 섬으로 추방되었지만, 약 20년 후 탈출하여 이집트로 피신했습니다. 그는 1963년 이집트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압드 엘 크림이 프랑스 공군이 화학 폭탄을 사용했다며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에 항의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식민지 전쟁에서 벌어진 화학무기 사용이라는 비극적 실체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리프 전쟁은 20세기 초 유럽 열강의 식민주의에 맞선 저항의 상징으로 평가되며, 압드 엘 크림의 투쟁은 이후 세계 각지의 반식민지 독립운동에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