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거인 아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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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아틀라스

뜻밖의 헤드라인, 대서양 횡단 항공 경주

신문들은 앞다퉈 같은 헤드라인을 실었습니다. 린드버그의 대서양 무착륙 횡단 비행 1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가 뉴욕–파리 항공 경주를 개최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주최 측은 이 대회가 항공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대기록으로 남을 것이라 자신했습니다.

뜻밖의 발표였고, 다소 기묘하기까지 한 계획이었지만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 환호 어딘가에는 묘한 불안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 열강 대부분은 대서양을 건널 만큼 긴 항속거리를 지닌 항공기를 이미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바다였습니다. '큰 도약'에 도전했다가 소식 없이 사라진 비행기들의 잔해가 아직도 갈라지지 않은 채 파도 위에 떠 있던 바다였습니다. 그런 곳에서 속도만을 다투는 경주라면, 그 위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총 22개의 참가 신청

그럼에도 주최 위원회에는 참가 신청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22건이었습니다. 프랑스 4개, 이탈리아 9개에 더해 미국과 영국의 이름도 올랐습니다. 독일은 빠져 있었지만, 대신 루마니아와 스웨덴의 참가 의향이 확인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결을 앞두고 마음 한구석에 찝찝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가 이 경주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은 오히려 거의 안도감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워싱턴의 논리는 분명했습니다. 자국의 클리퍼(Clippers) 호를 앞세워 양 대륙을 잇는 최초의 상용 노선을 '안전'이라는 깃발 아래 실험하고 있는 마당에, 목숨을 건 속도 경쟁은 시기상조라는 것이었습니다.

경주는 방향을 바꾸다 — 이스트르–다마스쿠스–파리

결국 프랑스는 대서양 횡단 경주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항공에 대한 열정까지 접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프랑스는 성격이 비슷한 국제 대회인 '이스트르–다마스쿠스–파리(Istres–Damas–Paris)' 경주를 새로 준비해 1937년 8월 20일과 21일 양일에 걸쳐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프랑스는 최고의 에이스들을 총출동시켰습니다. 장거리 비행의 명조종사들인 코도스(Codos), 로시(Rossi), 기요메(Guillaumet)가 각각 브레게 '풀귀르(Fulgur)', '티폰(Typhon)', 파르망(Farman)기를 몰고 나섰고, 여기에 프랑수아(François) 중령이 블로흐(Bloch)기로 합류했습니다.

이탈리아 역시 강력한 진용을 자랑했습니다. 사보이아-마르케티 S.79 7대와 피아트(Fiat) 1대, 무려 8개의 엔트리를 내세운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클라우스턴(Clouston)이 드 해빌랜드 코멧(DH.88 Comet)기로 출전표를 던졌습니다. 지중해 연안의 이스트르에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거쳐 파리로 이어지는 대장정이 이제 눈앞으로 다가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