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안토니오 콜리나스(Antonio Colinas)가 1983년 시집 『밤 너머의 밤(Night beyond the night)』 제10송에 담은 구절들은, 로마 군단병의 시선에서 바라본 전쟁의 가혹함과 전투의 공포를 절묘하게 드러낸다. 전투 속 병사의 경험을 생생하게 그린 서술은 사실 서양 문학의 효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예: 제13권 540행 이하, 제14권 383행 이하). 호메로스와 스탕달, 톨스토이 같은 19세기 작가들 사이에는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두 작가는 각자의 소설 『파르마의 수도원』(1839)과 『전쟁과 평화』(1869)에서 전투라는 개인적 경험을 가장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측면에서 다룬 선구자였다.
문학 밖에서는 1880년 프랑스 대령 아르당 뒤 피크(Ardant du Picq)의 유작 『전투 연구』가 출간되어, 고대 세계의 전투에서 출발해 전쟁 중 병사의 행동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그러나 군사사학의 전투 연구 방식에 급진적 변화를 가져온 것은 1976년 출간된 존 키건(Sir John Keegan, 1934~2012)의 저서 『전투의 얼굴(The Face of Battle)』이다. 키건은 전술 분석과 최고 지휘부의 관점에서 물러나, 전투의 물리적 조건과 전투가 낳는 특유의 감정과 행동, 그리고 병사들이 도주하지 않고 싸우게 만드는 동기를 탐구했다.

비인간화된 자동인형, 로마 군단병
앞서 언급한 콜리나스의 구절 이후, 고대 로마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키건이 제시한 접근법이 고대 로마의 전투에 적용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데 동의하기까지 거의 2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물론 사료가 지닌 내재적 한계는 있었다. 선구자는 영국의 에이드리언 골즈워디(Adrian Goldsworthy)로, 저서 『전쟁 중의 로마군(The Roman Army at War)』(1996)을 통해 완벽히 규율된 채 자기 주도권 없이 움직이는 '비인간화된 로마 병사', 즉 자동인형이라는 통념을 해체했다. 이후 여러 학자들이 완벽한 기계 부품으로서의 군대가 아니라 개개의 전투원과 가장 인간적인 면모에 주목하며 로마 군단병의 전투 경험에 빛을 비추려 애썼다. 지난 20년간 세이빈, 즈모디코프, 데일리, 케사다, 렌던, 안데르스 등 학술 성과도 풍성하게 이어졌다.
골즈워디가 키건식 접근법으로 전투를 연구할 당시, '자동인형 군단병'이라는 이미지는 기존 역사학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런 경향은 대중문화에서 더욱 두드러졌는데, 주된 원인은 영화 매체가 전달한 단편적이고 흑백논리적인 이미지였다. 놀랄 만큼 현대적이고, 고도로 조직화되며, 철저히 규율된 군대로서의 로마군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파르타쿠스』(1960)의 마지막 전투 시퀀스일 것이다.
영화 속 로마 전투의 얼굴
키건의 사상은 학계의 경계를 넘어 확산된 것으로 평가된다. 페르난도 케사다가 적절히 입증했듯, 최근 수십 년간 발표된 고대를 소재로 한 역사 소설에서도 '전투의 얼굴'은 뚜렷한 반향을 일으켰다. 한편 1980~90년대부터 영화라는 대중 매체는 전투원의 개인적 경험과 전투의 가장 피비린내 나는 측면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최근 작품 일부에서는 초현실적인 잔혹 묘사로까지 치닫는 이 사실주의 경향은 영화와 TV는 물론 그래픽 노블, 특히 비디오 게임 같은 대중 포맷 전반의 미학이기도 하다. 이 흐름에서는 키건의 사상만큼이나 영상 매체의 관습 자체와 그 미학적 발전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베트남전과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 더 최근의 분쟁 경험이 전쟁에 대한 집단적 상상력을 형성하는 데 끼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실시간 TV 중계 전투 화면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연구까지 그 범위는 다양하다. 이런 의미에서 『프라이빗 라이언』(1998)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고, 이후 공포와 혼돈, 생생한 신체 감각, 전투 경험의 주관적 시선을 화면에 담는 표현은 『덩크irk』(2017) 같은 최근작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2000년 『글래디에이터』 개봉 이후 전투 묘사는 전투원의 개인적 경험과 전투의 가장 원초적이고 잔혹한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해당 작품의 각본가 겸 프로듀서 데이비드 프란조니(David Franzoni)는 게르마니아 전투 오프닝 시퀀스를 두고 이를 정확히 짚은 바 있다. 감독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역시 제1차 세계대전 전장을 참조한 재현을 추구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가 오마하 해안 상륙 장면을 광란적으로 그릴 때 사용한 영화 기법과 유사한 기법을 활용했다고 인정했다.
고전 영화 속 로봇 같은 비인간화된 로마 병사상과 대조적으로, 최근 작품에서는 훨씬 인간화된 군단병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대사는 물론 카메라 워크, 세트 연출, 전투 음향, 배경 음악의 유무에 이르기까지 영화 언어의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주로 전투 장면을 통해 드러나는 새로운 로마 병사 묘사다. 드라마 『로마』(2005~2007), 『센츄리온』(2010), 『독수리 군단』(2011), 그리고 리메이크작 『벤허』(2016) 등을 분석해 보면, 전투를 군단병의 공포와 시점에 깊이 몰입시키는 극도로 생체감각적인 접근이 관찰된다. 필자는 이러한 전쟁 표현, 제7예술의 새로운 유행, 그리고 '전투의 얼굴'로 불리는 사학적 전환의 접근법 몇 가지 사이의 연관성을 정립한 바 있다.
21세기 로마 영화에서 나타난 이러한 변화의 가장 의미 있는 사례 중 하나가 『센츄리온』(2010)이다. 제9군단이 학살당한 뒤 퀸투스(마이클 패스벤더 분)가 남기는 독백은 그 대표적 예다.

로마 전투의 처참한 결과를 강조하는 흥미로운 영화적 사례는 더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덜 어두운, 좀 더 아이러니한 톤으로 풀어냈다. 드라마 『로마』 시즌 2에서 필리피 전투 직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제임스 퓨어포이 분)와 옥타비아누스(사이먼 우즈 분)가 나누는 짧은 대화가 그것이다.

분명한 것은 대사를 넘어, 영화—여기서는 '로마물'—이 전투의 얼굴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낼 수 있는 시각적 자원을 폭넓게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독수리 군단』(2011)의 오프닝 장면 하나는 특히 시사적이다. 군단병들의 얼굴을 반복해 클로즈업함으로써 이 로마 병사들의 불안과 공포가 강조되는데, 너무나 인간화된 모습이라 그중 한 명이 구토 충동조차 참지 못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진영 문 앞에 도열해 자신들보다 훨씬 많은 브리튼족과의 대결을 기다리는 그들의 얼굴은, "모든 전투에서 가장 먼저 패배하는 것은 눈이다"(『게르마니아』 43.5)라는 로마 작가 타키투스의 구절을 그대로 화면에 옮긴 듯하다.
주석
[1] 필자는 "Screening the Face of Roman Battle: Violence Through the Eyes of Soldiers in Film"이라는 발표 논문에서 이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 바 있다. 이 발표는 제5회 IMAGINES 국제학술대회 "공포와 격노: 현대 상상 속 고대의 폭력"(2016, 토리노)에서 이루어졌으며, 올해 IMAGINES 프로젝트가 기획하고 Bloomsbury에서 출간하는 공동 단행본에 실릴 예정이다.
[2] Desperta Ferro Especial #VI 『로마 군단(I): 중기 공화정』에 실린 페레스 루비오의 기고문도 함께 참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