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군의 폭격 없이 병력 집결을 끝내야 하는 숙제
공산 진영에게는 또 하나의 난제가 있었습니다. 미군의 폭격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최종 병력 집결을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공습 자체가 중단되는 것이었죠.
그래서 1967년 말 하노이에서 열린 외교 행사와 그 밖의 여러 외교 무대에서 북베트남 관리들은 미국의 폭격이 중단된다면 북베트남이 '평화 회담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슬며시 내비쳤습니다. 이전까지 반복해 온 입장이 '참여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태도 변화가 워싱턴에서 간과될 리 없었습니다.
루마니아를 통한 비공식 메시지
1968년 1월 중순, 공산권 국가인 루마니아가 중간 전달자 역할을 자처해 대표단을 하노이로 파견했습니다. 이에 미국은 선의를 입증하겠다며 하노이 인근 지역에 대한 폭격 중단을 제안했습니다. 물론 북베트남이 바라던 전면 중단은 아니었지만, 통상적인 휴전 기간에 시행되던 조치와 합쳐진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수준이 될 수 있었습니다.
테트 연휴를 활용한 시간 벌기 전략
여기에 하나의 추가 전략이 더 필요했습니다. 공세가 시작되어 폭격이 재개되기 전까지, 북베트남 주민들이 먼저 테트(음력설)를 제대로 쇨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명절 날짜를 바꾸어 선포하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하노이 정부는 북베트남의 음력설 축제가 '공식' 날짜인 1월 30일에 시작하는 대신 하루 앞당겨 시작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축제는 원래 테트 전야부터 시작되므로, 북베트남 주민들은 자국 군대가 남베트남으로 공세를 개시하기 전인 실제 테트 연휴 개막 전, 즉 1월 31일 새벽 이전까지 사흘 동안 새해를 마음껏 경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