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바빌로니아인들에게 인간의 탄생은 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믿었던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Enūma Eliš)』에 따르면, 최고신 마르둑(Marduk)은 인간을 창조하여 신들을 대신해 힘든 노동을 짊어지게 했습니다.
즉, 인간은 본질적으로 신들을 섬기고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습니다. 인간이 농사를 짓고 제물을 바치며 성전을 돌보는 동안, 신들은 육체적인 수고에서 벗어나 보다 신성한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 창조의 배경
서사시에 따르면 마르둑은 혼돈의 여신 티아맛(Tiamat)과의 거대한 전쟁에서 승리한 뒤 세상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러나 신들 역시 끊임없는 유지와 노동의 부담을 안고 있었고, 이를 대신할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마르둑은 티아맛의 부하였던 킹구(Kingu)의 피를 사용해 인간을 빚었으며, 그 피에는 이미 '노동과 섬김'이라는 운명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합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역할
바빌로니아인의 관점에서 인간의 삶은 곧 신에 대한 봉사였습니다. 기름과 포도주를 바치고, 운하를 파고, 도시를 건설하고, 신상을 돌보는 모든 행위가 신들의 안식을 위한 필수적인 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인간이 신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당시 메소포타미아 사회의 종교적 가치관을 잘 보여줍니다.
결국 마르둑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신들의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덜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인간은 '신들의 대역 노동자'로 태어났으며, 이것이 고대 바빌로니아 문명이 그려낸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목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