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립 병력 구출과 질서 있는 후퇴
털리(Tully)가 이끄는 부대는 특별한 저항 없이 진격을 계속해 고립되어 있던 '잃어버린 소대'를 찾아냈다. 구조대의 도착을 확인한 병사들은 필연적으로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그들을 맞이했다. 이들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옮기며 착륙장(X-RAY) 방향으로 질서 있게 천천히 후퇴했고, 저격수에게 단 한 명의 부상자만을 내주는 데 그쳤다.
그러나 밤이 되면서 상황은 다시 긴장의 연속이었다. 아군 포병은 밤새 방어선 전체를 상당한 깊이까지 지원 사격했지만, 적은 끊임없이 진지에 접근했다. 결국 북베트남군은 새벽 5시 30분에 제2대대 B중대를 향해 중대 규모의 공격을 감행했고, 한 시간 뒤에는 또 한 차례의 공격이 이어졌다.
새벽의 일제 사격, 매복 저격수의 몰락
전날의 함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무어(Moore) 중령은 동이 트자마자 진지 전방의 수림과 개미집, 키 큰 풀숲을 향해 1분간 일제 사격을 명령했다. 이 조치는 완벽한 성공이었다. 기병대원들로부터 불과 몇 미터 떨어진 나무 위에서 저격수들이 그대로 떨어져 나왔고, 적의 분대 규모 공격은 시작도 전에 좌절되었다.
일시적인 정적이 흐른 뒤 무어는 진지 전방 500미터까지 지형을 소탕하는 작전을 결심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제2대대 B중대는 다시금 기습을 받았는데, 놀라운 것은 쓰러졌던 자리에서 수류탄을 던지는 북베트남군 부상병들까지 이 공격에 가담했다는 사실이었다.
정밀한 항공 지원과 전선 안정화
B중대는 싸우면서 방어선 안쪽으로 물러났다. 이때 공군 전방통제관(FAC)의 정밀한 유도가 빛을 발했다. 500파운드 폭탄이 방어선에서 불과 25야드(약 23미터) 밖의 목표물에 투하된 것이다. 이런 강력한 압박에 적 병력은 더 이상 버틸 여력을 잃었고, 이후 실시된 출격 작전에서는 미군이 미약한 저항만 만났다.
X-RAY 착륙장이 충분히 안정화되자 제2대대의 다른 중대들이 착륙하여 지칠대로 지친 무어의 병력을 교대할 수 있었다. 제7기병연대 제1대대 B중대와 동 대대 A중대 제3소대는 헬기로 X-RAY 착륙장을 떠났으며, 무어는 곧 대령으로 진급하게 된다.
전과와 희생
적의 피해는 확실히 확인된 전사자 634명, 사망 추정 581명, 포로 6명으로 집계되었다. 무기와 장비를 끝까지 지키기로 유명했던 북베트남군조차 막심(Maxim) 중기관총 4정을 비롯해 로켓 발사기와 박격포 등 100개가 넘는 개인·집단 화기를 현장에 버리고 갔다.
반면 미군의 손실은 전사 79명, 부상 121명이었다.
이아드랑(Ia Drang)이 남긴 교훈
이아드랑 전투가 남긴 교훈은 명확했다. 첫째, 전투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병력이라도 충분한 화력 지원과 증원만 뒷받침된다면 노련한 적과 맞서 충분히 선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구원자는 헬리콥터였다. 헬기는 적의 후방 거점 한복판에서 포위된 하나의 대대를, 끊김 없는 보급선을 갖춘 능동적인 부대로 탈바꿈시켰다. 보급을 받고, 증원을 수용하고, 부상자를 후송하며, 주도권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부대로 말이다. 이아드랑은 또한 헬리콥터가 결코 깨지기 쉬운 '전쟁 장난감'이 아니라 현대 전장을 바꾸는 핵심 자산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전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