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차갑고 딱딱한 작은 남자: 제2차 세계대전 그리스 레지스탕스의 이면

제3의 정치 세력, 공산주의의 부상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리스 정치 무대에는 새로운 세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공산주의였다. 그리스 공산당(KKE)은 전간기 내내 대중적 지지 기반을 넓히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 어떤 정당보다 철저하게 조직되고 규율 있는 집단이었다. 어쩌면 바로 그 특성 탓에 대중의 마음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같은 이유로 독재 국가 치안 당국의 최우선 표적이 되었다는 점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그리스 공산당은 요안니스 메탁사스 독재 정권의 탄압 속에 거의 궤멸 상태에 몰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박해는 당원들을 지하로 내몰면서도 값진 경험을 쌓게 해 주었고, 훗날 히틀러-파시스트 점령군에 맞서는 저항 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저항은 곧 권력 장악의 수단

제2차 세계대전기 그리스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지점 중 하나는, 공산주의자들이 저항 운동을 무엇보다 먼저 '권력 장악의 수단'으로 간주했다는 사실이다. 이미 1929년 그리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당의 핵심 과업 중 하나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여 노동자·농민 정부의 수립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명시한 바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처음부터 이런 관점으로 사태를 바라보았다. 반면 다른 정치 세력들이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목표를 깨닫기까지는 무한히 긴 시간이 걸렸다.

국민해방전선(E.A.M.)과 '차갑고 딱딱한 작은 남자'

1941년 가을, 독일 점령 초기의 충격이 한풀 꺾인 무렵부터 여러 저항 단체들이 하나둘 결성되기 시작했다. 전간기의 경험을 통해 순수한 공산주의 이념만으로는 그리스인들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는 교훈을 얻은 공산주의자들은, 좌파 성향의 여섯 개 안팎의 단체를 아우르는 통합 운동이라는 이름을 내건 자신들만의 조직, 이른바 국민해방전선(E.A.M.)을 만들었다.

E.A.M.을 이끈 것은 스페인 내전에까지 참전했던, 차갑고 딱딱한 인상의 작은 체구 남자 아리스 벨루키오티스였다. 그와 함께 노동자 출신으로 1920년대 초부터 공산주의 운동에 몸담아 온 게오르기오스 시안토스가 조직을 뒷받침했다.

E.L.A.S.의 창설과 E.D.E.S.의 등장

1942년 4월, E.A.M.은 게릴라 부대 편성 방침을 공식 선언했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인민해방군(E.L.A.S.)이었다. 그로부터 한두 달 뒤에는 또 다른 대형 저항 조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스 국민공화연맹의 후원 아래 결성된 E.D.E.S.였다. 이 조직의 수장은 공화파로 명성이 높았던 나폴레온 제르바스 대령이었으나, 그는 훗날 왕정 지지 입장으로 선회하게 된다.

E.L.A.S.와 E.D.E.S. 외에도 여러 저항 단체가 활동했지만, 이들 어느 조직도 왕정 복고를 내세우는 경향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당시 그리스 저항 진영의 특징적인 면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