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배경
대영제국은 19세기 말부터 이집트에 깊숙이 개입해 왔습니다. 영국은 이집트를 자신의 보호령 아래 두었고, 1922년에 독립을 허용했지만 여전히 무장 병력을 이 지역에 주둔시켰습니다.
한편 베니토 무솔리니는 리비아와 에티오피아 등에 진출해 있던 이탈리아의 입지를 바탕으로,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 영국과의 전쟁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군이 거듭 실패를 거듭하자, 아돌프 히틀러는 지중해와 아프리카 방면에 직접 개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프리카 원정군 사령관으로 파견된 에르빈 롬멜은 1941년 2월부터 4월 사이 아프리카 전역에서 연이은 승리를 거두며 명성을 쌓았습니다. 기갑 부대를 지휘하는 롬멜의 뛰어난 전략적 역량은 결국 독일군을 이집트 국경까지 진격시켰습니다.
1942년, 전황의 기로

주요 인물
-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 버나드 몽고메리 (영국 제8군 사령관)
- 에르빈 롬멜 (독일 아프리카 군단 사령관)
-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
-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총리)
전투의 경과
엘 알라메인 전투는 넓은 의미에서 '사막 전쟁(Western Desert Campaign)'을 구성하는 일련의 전투 중 하나입니다. 1941년 6월 21일 토브룩을 함락한 독일군은 진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전략적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와 수에즈 운하를 장악한 뒤, 나아가 이라크의 유전 지대까지 진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제1차 엘 알라메인 전투
1942년 7월, 롬멜은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약 60km 떨어진 엘 알라메인 도시를 공략하려 시도했지만, 8월 말에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교전은 오늘날 제1차 엘 알라메인 전투로 불립니다.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와 연합군의 승리
1942년 11월 2일, 영국군을 지휘하던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은 강도 높은 포병 사격으로 공세의 발판을 마련한 뒤 독일군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했습니다. 해군과 공군의 지원까지 받은 연합군은 독일군보다 월등히 많은 병력과 물자를 동원했고, 11월 4일 마침내 승리를 확정했습니다.
패색이 짙어진 롬멜은 잔여 병력을 리비아 벵가지 방면으로 철수시키기로 결심했지만, 히틀러는 끝까지 저항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한편 영국군은 적의 반격 가능성을 우려하여 패주하는 독일군을 즉각 추격하지 않았습니다.
전투의 결과와 역사적 의의
- 엘 알라메인에서의 연합군 승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추축국 군대를 상대로 거둔 최초의 결정적 승리였으며, 이후 스탈린그라드 전투(동부 전선)와 미드웨이 해전(태평양 전선)에서의 연합군 승리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 1942년 11월 8일, 영국·미국 연합군이 알제리와 모로코에 상륙하는 '횃불 작전'을 감행하면서 북아프리카의 추축국은 협공에 몰렸고, 아프리카에 배치된 독일군은 결국 1943년 5월 항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