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대로 상륙하라. 단, 물자와 무엇보다 인명의 피해는 최소화하라." 런던에서 포클랜드 제도(말비나스) 원정을 총지휘하는 샌디 우드워드(Sandy Woodward) 제독에게 내려온 지시는 명확했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한 달간, 적의 공습에 상시 노출된 영국 기동부대의 함상에서 우드워드를 중심으로 한 전략가들은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검토했다.
철저한 정찰과 준비
교두보를 확보한다? 그렇다면 어디에? 영국군은 현지 지형을 잘 알고 있었다. 돌격 부대는 이미 포클랜드 제도에서 여러 차례 기동 훈련을 실시한 바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우연에 맡겨서는 안 됐다. 모든 병력이 집결하기를 기다리는 몇 주 동안 함상 참모부는 해상 포격, 정찰 비행, 그리고 유명한 S.A.S.(특수공수부대)와 S.B.S.(특수정찰대) 팀의 기습 작전을 거듭 벌여 적의 방어 체계를 시험하고, 상륙 작전 성공에 필수적인 방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상륙 지점, 포트 산카로스 만
우드워드 제독과 참모 장교들의 선택은 마침내 포트 산카로스 만으로 좁혀졌다. 군도의 두 주요 섬을 가르는 해협인 포클랜드 해협 입구, 솔레다드 섬 북서쪽 끝에 자리한 이 은폐된 곳은 상륙 작전의 성공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아르헨티나군의 병력 배치가 미미했고, 최종 목표인 포트 스탠리로 이어지는 두 개의 도로의 출발점이었으며, 수송선의 하역 작전에 활용할 수 있는 자연 항구가 있었고, 연안 지형도 완만했다. 이상적인 장소였다.
이제 남은 것은 상륙일(D-Day)을 정하는 일뿐이었다. 5월 20일, 더 정확히는 20일 밤에서 21일 새벽 사이로 결정되었다.
암야를 틈탄 상륙
런던의 승인을 받은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어둠과 왕립해군 여러 부대가 군도 곳곳에서 벌인 양동 작전을 틈타 영국 개입군의 선발 부대가 포클랜드에 발판을 마련했다. 여객선 캔버라 호, 페리 노를란드 호, 수송함 HMS 피어리스 호 등 함대를 호위하던 여러 선박을 통해 해 질 녘에 해협을 따라 이송된 병력은 즉시 상륙정으로 옮겨졌고, 왕립해병대 코만도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해안에 도착했다. 해상에서는 여러 척의 미사일 프리깃함과 구축함이 작전을 엄호했다.
만을 내려다보는 고지에 배치된 아르헨티나군 관측 초소는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다. 21일 금요일 동이 트고 나서야, 먼저 이 감시병들을 통해, 이어서 정찰 비행을 통해 포트 스탠리에 있는 메네데스(Menéndez) 장군의 아르헨티나군 사령부는 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알게 되었다. 며칠 전 영국군이 필블 섬에서 성공시켰던 일회성 기습 작전의 연장이라고 판단한 아르헨티나군은 즉시 본토 기지의 폭격 비행대를 동원해 대응에 나섰다.
제공권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
21일 금요일 하루 종일, 아르헨티나 조종사들과 영국 포병들은 제공권을 놓고 가차 없는 전투를 벌였고, 그 사이 선박과 해안 사이를 오가는 왕복 수송이 끊이지 않으며 병력과 장비가 상륙했다. 사실상 공중 지원이 없었고 얕은 수역에서 함선의 기동성도 크게 제한된 가운데, 왕립해군의 대공 포대들이 이 치열한 결투를 거의 홀로 맞아냈다. 최초의 블로파이프(Blowpipe)와 레이피어(Rapier) 대공 미사일 부대가 지상에 배치될 때까지는 말이다.
이 전투에서 영국 해군은 분쟁 개전 이래 두 번째 대형 수상 함정을 잃었다. 약 15발의 적 미사일에 격침된 프리깃함 HMS 아던트(Ardent)호였다. 스카이호크, 미라주 III, 다거기 조종사들도 필사적으로 맞서 여러 함선에 손상을 입혔지만, 상륙하는 영국군을 저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오히려 21일 금요일 저녁까지 1,000명이 넘는 왕립해병대와 제2·제3 공수연대 병력이 진지를 굳건히 지켰고, 시간이 갈수록 증원군이 계속 도착했다.
교두보 확장과 포트 스탠리 진격
이후 6일 동안, 영국 해군 항공대의 '점프젯' 해리어기들이 때때로 요격하는 아르헨티나 공군의 매일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줄리언 톰슨(Julian Thompson) 준장의 지휘 아래 상륙 부대는 교두보를 강화하고 확장해 섬 수복 작전의 후방 기지로 만들었다.
5월 27일, 당시 약 5,000명에 이른 영국 상륙 부대는 동쪽 80km 지점의 포트 스탠리를 향해 진격을 개시했다. 공격 부대는 두 개 집단으로 나뉘어 수도로 이어지는 두 개의 도로를 따라 전진했다. 왕립해병대 제20·제42·제45 코만도는 남반구 겨울 초입의 잦은 비로 통행이 고된 북쪽 도로를 통해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남쪽 도로로는 제2·제3 낙하산 연대가 비슷한 악조건 속에서 첫 번째 대규모 아르헨티나 수비대를 향해 진격했다. 포트 다윈 마을과 2km 떨어진 구스 그린(Goose Green) 활주로를 방어하는 병력은 1,500명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