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미국 육군 제25보병사단 '트로픽 라이트닝(Tropic Lightning)'은 1941년 10월 1일, 하와이 준주 스코필드 배럭에서 제24보병사단과 같은 날 창설되었습니다. 태평양 지역에서 태동한 이 사단은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 육군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해 왔습니다.
편제
두 사단은 명문 '하와이 사단'의 병력과 하와이 주방위군 2개 연대를 모태로 편성되었습니다. 제24보병사단은 제19·제21보병연대와 주방위군 제299보병연대를, 제25보병사단은 제27·제35보병연대와 주방위군 제298보병연대를 각각 배속받았습니다. 그 외 전투·지원 부대들은 하와이 사단에서 차출되거나 신설되어 양 사단에 분배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창설 후 단 10주간의 평시 근무만을 마친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후 1년간 두 사단은 하와이 해안 방어 임무를 수행하며 정글전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1942년 11월 25일, 제25사단은 남태평양 전선으로 이동을 개시하여 12월 17일부터 이듬해 4월 1일까지 과달카날에 상륙했습니다. 상륙 직후 '대혼전(Grand Mêlée)'이라 불린 전투에 투입되어, 5개월간 거점을 구축해온 일본군 주력과 미 육군·해병대가 치열하게 맞서던 전장에 합류했습니다.
1943년 1월 10일부터 한 달간 이어진 격전 끝에 일본군 수비대를 항복시키며, 제25사단은 첫 실전 임무를 속도와 공격성으로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이후 솔로몬 제도로 이동해 아룬델·콜롬방가라 섬을 확보하고 벨라라벨라 섬 탈환전에 참가했습니다. 솔로몬 전역을 마친 뒤 뉴질랜드와 뉴칼레도니아에서 휴식과 재훈련을 가졌습니다.
1945년 1월 11일, 필리핀 루손 섬에 상륙한 사단은 제32보병사단과 합류해 카라발로 산맥에서 치열한 산악전을 벌이며 165일 연속 최전선에 머무르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필리핀 해방 공로로 '필리핀 대통령 부대 표창' 등 7개의 표창을 받았으며, 일본 본토 침공 준비를 마치던 중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오사카에 진주군으로 상륙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제25사단 장병 6명이 명예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한국전쟁 (1950~1953)
일본 주둔 5년 차인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유엔군 일원으로 7월 5~18일 한국에 투입된 제25사단은 부산항으로 통하는 진입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완수해 첫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았습니다.
부산 교두보 확보 후 10월 유엔군의 북진 작전에 참가해 '캐틀 기동부대'에 배속, 압록강까지 진격했습니다. 그러나 중공군의 대거 개입으로 전선이 붕괴되자 질서 있게 철수, 11월 30일 청천강 남안에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이후 오산 이남까지 물러났으나 전선을 재정비했습니다.
1951년 1월 15일 신년 공세로 인천과 김포 비행장을 탈환한 뒤, '리퍼(Ripper)', '던틀러스(Dauntless)', '디토네이트(Detonate)', '파일드라이버(Piledriver)' 작전을 연이어 수행하며 유엔군의 '철의 삼각지대' 확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1951년 여름 휴전 회담이 시작되자 주 저항선 유지 임무로 전환, 1952년 겨울까지 정찰·방어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1953년 5월 5일 서울 방면 방어를 맡아 5월 28~30일 공산군의 대공세를 격퇴했습니다. 6월 캠프 케이시에서 예비대로 전환, 7월 27일 정전 협정 체결까지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서울 방면 방어전(5.5~7.9) 공로로 두 번째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았으며, 14명이 명예훈장을 받았습니다. 1954년 9~10월 철수할 때까지 12년 만에 하와이로 복귀했습니다.
복귀 후 정글전 특화 훈련과 아시아 언어 교육을 통해 미 육군 유일의 대게릴라전 전문 부대로 거듭났습니다.
베트남 전쟁

1963년 1월, 주월 미군사령부(MACV) 요청으로 교관단과 헬기 포수 분견대를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개입이 이뤄졌습니다. 1965년 8월 제65공병대대 C중대가 깜란에 상륙해 항만 건설을 지원했습니다.
12월 31일 제3여단이 플라이쿠에 배치되었으며, 1966년 1월 15일까지 미 군사사상 최대 규모의 전술 공수 작전으로 4,000여 명이 제2군단 전술구역에 투입되었습니다. 3월 28일 사단 주력이 제3군단 전술구역 꾸찌에 주둔하며 제1·2여단이 캄보디아 국경 인근과 사이공 방어를 맡았습니다.
1967년 1월 '시더 폴스(Cedar Falls)' 작전으로 베트콩 제4군구 사령부가 있던 '철의 삼각지대'를 수색했고, 2월 22일~5월 14일 '정션 시티(Junction City)' 작전에 참가했습니다. 이후 하우장성 소탕전을 벌이다 12월 제3군단 구역으로 복귀, 1968년 2월까지 사이공 서부와 캄보디아 국경 지역에서 작전을 이어갔습니다.
1969년 구정 공세 때 사이공 방어전과 역공세 소탕전에 참가했습니다. 5월부터 '베트남화' 정책 지원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꾸찌 일대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1970년 4월 캄보디아 국경 너머 적 성소에 대한 대공세에 참가해 대량의 무기와 물자를 노획했습니다. 6월 작전을 마치고 꾸찌로 복귀해 베트남화 작업을 재개했습니다. 12월 본국 귀환을 시작해 1971년 제2여단이 마지막으로 철수할 때까지 1,716일간 주둔했습니다.
베트남전 기간 중 제25사단 장병 21명이 명예훈장을 받았습니다.
사막의 폭풍 작전
주임무가 한반도 재발발 등 태평양 지역 대비에 있었던 관계로 본대 차원의 참전은 제한적이었습니다. 다만 제27보병연대 4대대 A·B·C중대에서 각 1개 소대씩(일명 '울프하운드') 1991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에 파병되었습니다. 이들은 당초 지상전 증원 소대로 편성되었으나, 사막전 훈련에서 탁월한 기량을 보여 제3야전군 부사령관의 요청으로 연합군 전방지휘소 경호부대로 재편성되어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2001~2003년 초기에는 전투 파병이 없었으나, 2004년 초부터 전투 부대 파병이 시작되었습니다.
- 제2여단: 2004년 2월 이라크 파병, 1년 뒤 스코필드 기지 복귀
- 제3여단: 2004년 3월 아프가니스탄 파병. 제27보병연대 2대대('울프하운드')와 제7포병연대 3대대 B포대가 선봉으로 파키스탄 접경 파크티카주에서 작전을 수행, 2005년 4월 귀환
- 제4여단(공수여단): 2005년 7월 알래스카 리처드슨 기지에서 창설, 2006년 10월 이라크 파병
- 2009년 3월: 제1·2·3여단 이라크, 제4여단 아프가니스탄 동시 파병
부대 마크의 유래
1943년 말 공식 채택된 어깨 표장은 번개 문양이 토란 잎 위에 얹힌 형태입니다. 토란은 태평양 도서 지방 원산 식물로, 사단의 창설 모태인 하와이 사단과 주둔·작전 지역을 상징합니다. 화살촉 모양의 토란 잎은 선명한 색채를 띠며, 번개는 행동의 신속성과 공격성을 의미합니다(원래는 통신 병과 상징). 적색과 금색은 하와이 왕조의 상징색입니다.
'라이트닝(Lightning)'이라는 별칭은 일본군이 'L' 발음을 어려워해 '라이팅'으로 발음한 데서 유래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해병대가 '라이트닝 디비전'이라 부르기 시작해 널리 퍼졌고, 열대 지방 창설 부대라는 의미로 '트로픽 라이트닝'으로 굳어졌습니다. 1953년 8월 3일 미 육군성이 공식 승인하며 미 육군 최초로 공식 닉네임을 가진 부대가 되었습니다.
사단 구호: "READY TO STRIKE! ANYWHERE, ANYTIME!" (언제 어디서든 타격 준비 완료!)
역대 사단장
맥스웰 머레이 소장(1941~1942) → J. 로턴 콜린스 소장(1942~1943) → 찰스 L. 뮬린스 소장(1943~1948) → 윌리엄 B. 킨 소장(1948) → 조지프 S. 브래들리 소장(1948~1951) → 아이라 P. 스위프트 소장(1951~1952) → 새뮤얼 T. 윌리엄스 소장(1952~1953) → 핼리 G. 매독스 소장(1953~1954) → 레슬리 D. 카터 소장(1954) → 허버트 B. 파월 소장(1954~1956) → 에드윈 J. 메신저 소장(1956~1957) → 아치볼드 W. 스튜어트 소장(1957~1958) → 존 E. 타이머 소장(1958~1960) → J. O. 시맨 소장(1960) → 제임스 L. 리처드슨 소장(1960~1962) → 어니스트 F. 이스터브룩 소장(1962~1963) → 앤드루 J. 보일 소장(1963~1964) → 프레더릭 C. 와이앤드 소장(1964~1967) → 존 C.F. 틸리슨 3세 소장(1967) → F.K. 미언스 소장(1967~1968) → 엘리스 W. 윌리엄슨 소장(1968~1969) → 해리스 W. 홀리스 소장(1969~1970) → 에드워드 바우츠 주니어 소장(1970~1971)
벤 스턴버그 소장(1971) → 토머스 W. 멜런 소장(1971~1972) → 로버트 N. 매키넌 소장(1972~1974) → 해리 W. 브룩스 주니어 소장(1974~1976) → 윌라드 W. 스콧 주니어 소장(1976~1978) → 오티스 C. 린 소장(1978~1980) → 알렉산더 와이앤드 소장(1980~1982) → 윌리엄 H. 슈나이더 소장(1982~1984) → 클로드 M. 킥라이터 소장(1984~1986) → 제임스 W. 크라이젤 소장(1986~1988) → 찰스 P. 오트스토트 소장(1988~1990) → 프레드 A. 고든 소장(1990~1992) → 로버트 L. 오드 3세 소장(1992~1993) → 조지 A. 피셔 소장(1993~1995) → 존 J. 마허 소장(1995~1997) → 제임스 T. 힐 소장(1997~1999) → 윌리엄 E. 워드 소장(1999~2000) → 제임스 M. 두빅 소장(2000~2002) → 에릭 T. 올슨 소장(2002~2005) → 벤자민 R. 믹슨 소장(2005~2008) → 믹 베드나렉 준장(2008.2~5, 직무대리) → 로버트 L. 캐슬린 주니어 소장(2008~2009) → 버나드 S. 샴푸 소장(2010~현재)
일화
-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이 베트남전 당시 제25사단에서 복무했으며, 그의 영화 <플래툰>의 주인공들도 제25사단 설정입니다.
- 테렌스 맬릭 감독의 <씬 레드 라인>은 제임스 존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 과달카날 전투에 참전한 제25사단 장병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 래퍼 아이스-티(Ice-T)가 제25사단에서 복무했습니다.
-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의 장남 트랙 페일린이 제25사단 소속으로 이라크에서 1년간 복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