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4년 11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세르비아 니시(니슈) 상공에서 벌어진 대규모 공중전은 분명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서로 맞서 싸운 것은 적이 아니라 같은 연합군 진영이었던 미국과 소련이라는 사실이다.
서로를 독일군으로 오인한 동맹국 간 충돌
세르비아 하늘에서 두 동맹국이 충돌한 명분은 단순했다. 서로를 독일군으로 착각한 것이다. 1944년 가을, 소련군은 발칸 반도 북부에서 독일군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11월 7일, 붉은 군대 제6근위소총군단의 대규모 차량 행렬이 니시에서 베오그라드 방면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전 10시경, 미군 P-38 라이트닝 전투기들이 어디선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급강하하며 소련 차량 행렬을 무차별 사격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차량이 불탔고, 소련군 31명이 전사하고 37명이 부상을 입었다. 전사자 중에는 제6군단장 코토프 중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륙 직후 벌어진 Yak-3의 반격
소련군은 즉시 자국 공군에 경보를 울렸다. 니시 공항에는 Yak-3 전투기를 운용하는 소련 제659항공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조종사들에게는 '독일 포케불프 Fw-189가 차량 행렬을 공격하고 있으니 즉시 요격하라'는 지령이 하달되었다.
Fw-189는 실제로 P-38과 다소 흡사한 외형을 지녔다. 두 기체의 공통점은 쌍동체(트윈붐) 구조에 여러 개의 수직 안정판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미군 전투기들이 이륙을 시도하던 소련기마저 공격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소련 전투기 한 대가 폭발했다.
500m 저공으로 날아오던 P-38들이 전열을 갖춘 상황에서, 저공비행 중이던 소련기들은 과감한 급상승 기동으로 아래에서부터 미군기를 역습했다. P-38 한 대가 불타며 추락했고, 미군기들의 기동에 또 다른 소련 전투기가 화염에 휩싸여 떨어졌다.
15분간의 도그파이트, 엇갈린 손실 집계
곧 에이스 조종사 알렉산드르 골두노프의 인솔 아래 소련 증원기들이 도착하면서 공중전은 약 15분간 더 이어졌다. 이 사건은 훗날 '니시 사건(Niš Incident)'으로 불리게 되며, 골두노프는 이 전공 이후 소련 항공대원수까지 오르는 등 눈부신 승진을 거듭하게 된다.
양측의 손실 규모는 지금까지도 명확하지 않다. 미국 측은 P-38 2대와 Yak 4대가 격추되었다고 주장한 반면, 소련 측은 P-38 4대와 Yak 3대가 격추되었다고 맞섰다. 당시 유고슬라비아 측 자료는 미군기 7대와 소련기 3대가 격추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 티토가 스탈린의 입장에 기울어 있었음을 고려하면 참고 수준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미국은 결국 이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곧 닥칠 냉전의 전주곡으로 평가한다. 미국은 소련에 합동조사위원회 구성을 제안했으나 스탈린은 이를 거부했다. 전쟁의 승리를 앞두고 동맹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순간이었던 셈이다.

독일 근접지원기 포케불프 Fw-189.

소련 전투기 Yak-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