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조셉 시몬 갈리에니(Joseph Simon Gallieni) – 마른 전투의 영웅

조셉 시몬 갈리에니(Joseph Simon Gallieni)

1849년 프랑스 오트가론(Haute-Garonne)의 생테(Saint-Béat)에서 태어나 1916년 베르사유에서 생을 마감한 조셉 시몬 갈리에니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군인 중 한 사람입니다. 보불전쟁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그는 식민지 통치와 조국 방어라는 두 개의 무대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조셉 시몬 갈리에니(Joseph Simon Gallieni) – 마른 전투의 영웅

조셉 시몬 갈리에니(Joseph Simon Gallieni)

식민지에서 다져진 군인 인생

1870년 보불전쟁 당시 바제유(Bazeilles) 전투에서 소위로 참전한 갈리에니는 이후 식민지 전역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893년부터 1895년까지 대령 계급으로 니제르, 세네갈, 통킹(베트남 북부)에서 복무하며 군사적·행정적 역량을 쌓았습니다.

그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 것은 마다가스카르 원정이었습니다. 갈리에니는 마다가스카르의 여왕 라나발로나(Ranavalona)를 폐위시켜 섬을 프랑스령으로 편입했고, 총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인도주의적 통치로 말라가시 민중의 마음을 얻었으며, 탁월한 행정 능력으로 나라를 풍요롭게 발전시켰습니다.

'마른 택시'로 구한 파리

1908년부터 최고전쟁평의회에 참석해 온 갈리에니는 1913년 정년에 도달해 은퇴를 앞두고 있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그에게 인생 최대의 무대를 열어 주었습니다. 1914년 8월 26일, 그는 파리 군정총감으로 임명되어 수도 방어의 최고 책임을 맡았습니다.

1914년 9월, 전환이 급박해지자 갈리에니는 파리 시내의 택시를 대거 동원해 제6군 병력을 전선으로 신속히 수송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른바 '마른 택시(Taxis de la Marne)'로 불리는 이 기발하고 과감한 조치는 프랑스군이 알렉산더 폰 클루크(Alexander von Kluck) 장군이 이끄는 독일군의 측면을 성공적으로 압박하는 결과를 낳았고, 우르크 전투의 승리로 이어져 마른 전투 전체의 대승을 견인했습니다.

조셉 시몬 갈리에니(Joseph Simon Gallieni) – 마른 전투의 영웅

마른 전투를 승리로 이끈 갈리에니

육군장관과 말년, 그리고 원수 칭호

1915년 10월 29일 아리스티드 브리앙(Aristide Briand) 내각의 육군장관으로 임명된 갈리에니는 건강이 크게 악화되어 1916년 3월 16일 사임했고, 불과 두 달 뒤 베르사유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후인 1921년, 프랑스 공화국은 그의 공헌을 기려 프랑스 원수(Maréchal de France)의 칭호를 추서했습니다.

갈리에니 원수는 또한 『마다가스카르 서간(Lettres de Madagascar)』과 『마다가스카르 평정(La Pacification de Madagascar)』이라는 두 권의 중요한 저작을 남겼습니다. 그의 삶은 군인이자 행정가로서 식민지 통치와 조국 방어 모두에 헌신한 한 사람의 흔적을 잘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