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야나가르, '승리의 도시'
비자야나가르(Vijayanagar)는 산스크리트어로 "승리의 도시"를 뜻하는 이름으로, 남인도에 위치한 대규모 유적 도시이자 1336년부터 약 1614년까지 존속했던 위대한 힌두 제국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제국은 처음에는 이 도시에서, 이후에는 오늘날 안드라프라데시주 남서부에 있는 페누콘다(Penukonda)에서 통치되었습니다.
툰가바드라(Tungabhadra) 강변에 자리한 이 고도(古都)의 위치는 현재 카르나타카주 동부의 함피(Hampi) 마을 일대로 확인됩니다. 웅장한 석조 사원과 궁전 유적이 펼쳐진 함피 유적군은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역사적·건축학적 가치를 널리 인정받고 있습니다.


제국의 건국과 확립
비자야나가르 도시와 첫 번째 왕조는 1336년 상가마(Sangama)의 다섯 아들들에 의해 세워졌으며, 그중 하리하라(Harihara)와 부카(Bukka)가 초대 국왕이 되었습니다. 두 형제는 데칸 고원에서 투글루크 왕조의 지배에 맞선 반란을 배경으로 새로운 힌두 국가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비자야나가르는 남인도 최대의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북방 무슬림 술탄국들의 침입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면서, 12세기와 13세기의 격동기를 거친 뒤 힌두 생활과 행정 체계의 재건을 이끌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무슬림 문화와의 접촉은 적대감보다는 새로운 사상과 창작 활동의 자극제가 되었고, 산스크리트어는 통합의 구심점으로 장려되며 각 지역의 문학도 크게 융성했습니다. 나아가 제국의 국경 밖에서도 땅은 전례 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렸습니다.

왕조의 교체와 크리슈나 데바 라야의 전성기
첫 번째 왕조인 상가마 왕조는 약 1485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바흐마니 술탄국과 오디샤 라자의 압박이 거세지던 시기에 나라심하(Narasimha)가 살루바(Saluva) 가문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왕조가 교체되었고, 이후 1503년에는 툴루바(Tuluva) 왕조가 살루바 왕조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툴루바 왕조의 가장 뛰어난 군주는 단연 크리슈나 데바 라야(Krishna Deva Raya)입니다. 그의 재위 기간(1509~1529) 동안 비자야나가르는 역사상 최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는 툰가바드라 강과 크리슈나 강 사이의 라이추르 도아브(Raichur doab) 지역을 1512년에 확보했고, 1514년에는 우다야기리(Udayagiri)를 비롯한 오디샤의 여러 도시를 정복했으며, 1520년에는 비자푸르 술탄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겼습니다.
탈리코타 전투와 제국의 몰락
그러나 크리슈나 데바 라야의 후계자들은 경솔한 대외 정책으로 적들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1565년, 비자야나가르의 수상 라마 라야(Rama Raya)는 탈리코타(Talikota) 전투에서 비자푸르, 아흐마드나가르, 골콘다 등 무슬림 국가들의 연합군과 맞서 싸웠으나 참패했고, 이 전쟁에서 제국의 수도 비자야나가르는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전투 이후 라마 라야의 동생 티루말라(Tirumala)가 제국의 실권을 잡고 아라비두(Aravidu) 왕조를 개창했으며, 수도를 페누콘다로 옮겨 한동안 제국의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내분과 비자푸르·골콘다 술탄들의 끊임없는 모략 속에 제국은 결국 1614년경 완전히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함피에 남아 있는 장엄한 유적들은 한때 인도 남부를 지배했던 이 위대한 제국의 영광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