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 콜드웰 – 호주 최고의 에이스 '킬러' 콜드웰
전적
28승 (1승 공동 격추 포함)
약력
"킬러(Killer)" 콜드웰은 사막 전선의 위대한 에이스로,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전역에서 거둔 28승(1승은 공동 격추)으로 호주 전투기 조종사 랭킹 1위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클라이브 로버트슨 콜드웰(Clive Robertson Caldwell)은 1910년 7월 28일 시드니 근교의 앨비언 파크에서 태어났다. 1938년, 그는 지방 비행 클럽에서 단 3시간 반의 실습 교육만으로 첫 솔로 비행에 성공하며 남다른 재능을 드러냈다.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콜드웰은 즉시 오스트레일리아 왕립 공군(RAAF)에 입대했다. 1941년 1월 조종사 날개 훈장을 받고 전투기 조종사로 중동 전선에 배치되었다. 당시 30세였던 그가 폭격기나 수송기—보통 그의 나이대에 배정되는 임무—가 아닌 전투기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비행 능력과 타고난 지휘 감각 덕분이었다.
신장 190cm에 체중 110kg의 거구였던 그는 어중간한 방식을 모르는 인물이었다. 강한 자신감과 결단력은 지중해 전선에서 벌어질 험난한 전투에서 그의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1941년 4월 11일, 그는 토마호크(Tomahawk) 전투기를 운용하는 영국 공군(RAF) 제250비행대대에 파일럿 오피서(Pilot Officer)로 부임했다.
잠시 시리아와 키프로스에서 작전을 수행한 뒤, 그의 부대는 키레나이카로 이동했다. 1941년 6월 26일 가잘라 상공 호위 임무 중 첫 Bf 109를 격추했고, 또 다른 조종사와 함께 Bf 110 한 대를 공동으로 격추했다. 7월 7일에는 이탈리아 피아트 G.50이 그의 격추 목록에 추가되었다.
1941년 8월 29일 토브룩 근방에서 JG 27 소속 독일 에이스가 기습적으로 급강하해 콜드웰의 토마호크에 불을 질렀다. 어깨에 경상을 입은 그가 낙하산으로 탈출하려던 찰나 화염이 다행히 꺼졌고, 그는 즉시 조종석에 앉아 Bf 109 한 대를 격추하는 데 성공한 뒤 기지로 귀환했다. 정비반은 그의 기체에 명중된 총탄과 파편이 무려 113발이나 되었다고 확인했다!
이 대담한 위업으로 그는 특별 비행 십자장(D.F.C.)을 수여받았고, 복무 5개월 만에 플라이트 중위(Flight Lieutenant)로 진급하는 파란만장한 승진을 이루었다. 이후 그의 전공은 눈부시게 쌓여 갔다. 하지만 콜드웰은 배운 전술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전법을 개척해 나갔다.
12월 5일, 엘아덴 근방에서 40대 규모의 슈투카 편대를 상대로 Ju 87 다섯 대를 격추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1941년 말에는 D.F.C.에 한 개의 바(bar)를 추가하고 플라이트 커맨더(Flight Commander)로 승진했다. 전적에 비례해 명성도 높아진 그는 이윽고 "킬러" 콜드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1942년 1월 14일, 공격적인 상어 아가미 도장으로 유명해진 키티호크를 운용하던 제112비행대대의 지휘를 맡았다.
1942년 2월 20일, 화려한 저공 선회 기동으로 적을 기습한 뒤 I./JG 27 소속 Bf 109를 격추했다. 3월 10일에는 키티호크의 새로운 역할인 전투폭격기를 시험 비행했는데, 이 역할은 이후 사막 전쟁에서 그 가치를 입증하게 된다. 3월 14일, 사막 전선에서 마지막 두 번의 승리를 기록했다. Bf 109(공동)와 마키 MC.202가 그것이었다. 1942년 5월 25일 지중해 전선을 떠날 때 그의 전적은 20.5승에 달했으며, 이는 해당 전역의 연합군 최고 에이스임을 보여주는 기록이었다.
RAAF가 그들의 신동의 귀환을 절실히 바라는 동안, 콜드웰은 몇 달간 영국과 미국에 머물렀다. 1942년 9월 말, 그는 영웅 대접을 받으며 호주로 돌아왔고, 국내 생산 부메랑(Boomerang) 전투기를 시험하는 제2작전전환훈련대(O.T.U.)의 지휘관이 되었다. 같은 해 11월 26일에는 다윈의 제1전투비행단으로 전출되어 1943년 1월 1일부터 윙 커맨더(Wing Commander)로 복무했다. 이 부대의 스핏파이어 VC들은 호주 해안에 대한 일본군 공습 요격 임무를 맡았다.
1943년 3월 2일, 여섯 대의 스핏파이어로 구성된 순찰대를 이끈 콜드웰은 열두 대의 "제로(제케)"가 호위하는 여섯 대의 "케이트" 폭격기를 요격해 아라푸라 해상에서 각각 한 대씩 격추했다. 그는 종종 직접 36~48대의 스핏파이어 대규모 편대를 지휘하며 일본군 진영에 큰 혼란을 초래했다. 비행단의 눈부신 활약 덕분에 그는 6월 22일 우수 공무 훈장(D.S.O.)을 수여받았다. 그의 마지막 격추 기록은 1943년 8월 20일 격추한 "다이나(Dinah)" 정찰기였다.
28.5승이라는 전적으로 그는 호주 에이스 중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며, 종전 2년 전에 전투를 마쳤음에도 어떤 동포도 이 기록을 넘어서지 못했다. 1943년 9월 28일 전선에서 물러난 그는 다시 제2작전전환훈련대를 지휘했다. 1944년 4월 14일에는 인도네시아 모로타이에서 스핏파이어 VIII을 장비한 제80전투비행단 사령관으로 전선에 복귀했고, 같은 해 8월 그룹 캡틴(Group Captain)으로 진급했다. 1945년 4월 오스트레일리아 참모본부에 합류해 1946년 2월 6일까지 근무한 뒤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 돌아갔다. "킬러" 콜드웰은 이후 사업계에 진출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