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클라우스 알라코스키: 26승의 핀란드 공군 에이스

격추 전적

26회

약력

클라우스 알라코스키(Klaus Alakoski)는 26대의 확인된 격추 기록으로 핀란드 공군 에이스 개인 랭킹에서 14위를 차지하고 있다. 1921년 8월 17일에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항공 분야에 깊은 열정을 보였으며, 겨울전쟁(Winter War) 중이던 1939년 핀란드 공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전쟁은 1940년 3월에 일찍 끝나버려 실전에 참여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1941년 초, 그의 첫 배속지는 포커 D.XXI(Fokker D.XXI)를 운용하며 핀란드 수도의 방공을 담당하던 제32비행단(LLv 32)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한 달밖에 머물지 못했고, 곧 요로이넨(Joroinen)에 주둔하며 피아트 G.50을 장비한 제26비행단 3개비행대(3./LeLv 26)로 전출되었다.

피아트 G.50과 첫 승리

핀란드 공군(Ilmavoimat)은 1939년 12월부터 1940년 6월 사이에 총 33대의 피아트 G.50을 도입했다. 이 기체는 뛰어난 성능의 항공기는 아니었다. 출력이 부족했고, 조종사들이 '포켓몬(Pokemons)'이라 불렀던 두 정의 기관총에 불과한 무장은 매우 빈약했다. 하지만 당시 핀란드로서는 구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이 항공기들은 제조사가 상상하지 못했을 혹독한 북유럽의 기후 조건 속에서 놀라운 내구성을 입증했으며, 소련이 맞서 투입한 폴리카르포프 I-153과 I-16 등을 상대로 방어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1941년 6월 22일,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된 날, 핀란드는 다시 소련에 대항해 총동원되었다. 같은 해 8월 3일, 알라코스키는 9대의 I-153과 교전한 6대의 피아트 편대에 참여했다. 이 전투에서 소련 측 복엽기 6대가 격추되었고, 핀란드 측은 단 한 대의 손실도 입지 않았다. 알라코스키는 바로 이 전투에서 자신의 첫 번째 격추 기록을 세웠다.

Bf 109와 연승 행보

1942년 그는 몇 달간 다른 부대에서 근무한 뒤 원래 부대로 복귀했다. 1942년 12월 10일에는 100번째 전투 출격 임무를 완수했다. 그러나 1943년 4월 말, HLeLv 34의 3개비행대(3./HLeLv 34)로 전출될 때까지 추가 격추 기록을 쌓지는 못했다. 다행히 새 부대에서 그에게는 스코어를 올릴 훨씬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그해 3월 말부터 이 부대는 메서슈미트 Bf 109G-2의 첫 인수분을 받기 시작했고, 우티(Utti) 기지에서 푸하카(Puhakka) 대위의 지휘 아래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1943년 5월 16일 첫 출격에서 알라코스키는 두 번째 I-153을 격추하는 데 성공했다. 1943년 5월 한 달간 그는 총 6대의 격추를 기록했으며, 그중 21일에는 라그(LaGG)-3 2대를 격추했다.

이 전투는 특히 격렬했다. 저명한 루카넨(Luukkanen) 소령이 지휘하는 메서슈미트 11대가 라그-3와 라그-5(La-5) 17대에 호위받는 Il-2 지상공격기 4대와 맞붙은 것이다. 여기에 브루스터 B.239 16대와 독일 공군(Luftwaffe)의 Fw 190 12대까지 전투에 합류했다. 최종적으로 Il-2 2대, 라그-3 2대, La-5 2대가 격추되었다.

1944년 6월 16일, 알라코스키는 200번째 출격 임무를 달성했다. 6월 28일에는 푸하카 대위의 지휘 아래 출격한 메서슈미트 9대 편대가 야크(Yak)-9 6대에 호위받는 Il-2 17대와 교전했고, 알라코스키는 폭격기 2대와 전투기 1대를 연달아 격추하는 활약을 펼쳤다.

전쟁의 종언

1944년 9월 4일, 핀란드는 마침내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소련과의 휴전 협정 조항에 따라, 그는 며칠 후 다시 무기를 들어야만 했다. 이번에는 하루 전날까지의 동맹국이었던 독일과 싸우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