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장 아카르트(Jean Accart): 제2차 세계대전 프랑스 공군의 전설적 에이스

제2차 세계대전의 프랑스 에이스

장 아카르트(Jean Accart)는 1912년 4월 7일 프랑스 센마리트주(Seine-Maritime)의 페캉(Fécamp)에서 태어나, 1992년 8월 19일 알프마리팀주(Alpes-Maritimes)의 라고드(La Gaude)에서 별세한 프랑스 공군의 전설적인 전투기 조종사다. 명예군단 훈장 대십자장, 11회 포상이 기록된 무공십자장(Croix de Guerre), 항공 훈장 등 화려한 서훈을 받은 그는, 1940년 프랑스 전역(5월 10일~6월 24일)을 확정 격추 12기, 추정 격추 4기라는 압도적인 전적으로 마감했다.

눈 사이에 박힌 총탄, 그리고 간신히 지켜낸 목숨

1940년 6월 1일, 아카르트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또다시 독일 폭격기를 공격하던 중 눈 사이에 7.92mm MG17 기관총탄을 정통으로 맞고 매우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당시 그가 탑승한 미국산 커티스 H-75 전투기는 전반적으로 준수한 기체였지만, 속도가 다소 부족했고 무장 역시 구경 7.5mm 소형 기관총 6정에 불과해 화력이 크게 떨어졌다. 이러한 열세 때문에 조종사들은 적의 기관총 사격을 오랫동안 견디며 목숨을 건 공격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아카르트는 낙하산으로 탈출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만약 이 부상이 없었다면, 아카르트는 1940년 프랑스 공군은 물론 영국 왕립공군(RAF)의 모든 전투기 조종사들을 앞서며 최고의 에이스 자리에 올랐을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그의 친구이자 부관, 후계자였던 에드몽 마랭라메슬레(Edmond Marin-la-Meslée)보다도 우위에 섰을 것이다.

1944년, 은밀한 귀환과 '베리' 비행단 지휘

아카르트는 피레네 산맥을 몰래 넘어 스페인을 거쳐 북아프리카로 향하는 험난하고 위험한 여정 끝에, 1944년 초 전선에 복귀했다. 그는 북아프리카 주둔 프랑스군(AF N)에서 직접 창설한 제2비행단 2전대(II/2) "베리(Berry)" 사냥 비행단의 지휘를 맡았으며, 이 부대는 영국 왕립공군(RAF) 소속 "제345비행대대"로도 알려져 있다. 부대는 스피트파이어 IX를 운용했지만, 안타깝게도 요격 임무보다는 전술 폭격과 지상 공격 같은 고되고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었다. 뛰어난 지휘관과 함께 빛날 수 있었던 이 부대는 공중전에서 몇 차례의 승리를 거두었으나, "베르나르 중령(Commandant Bernard)"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한 아카르트 본인의 개인 격추 기록은 남지 않았다.

전후 경력과 드골 대통령과의 결별

전후 아카르트는 대령으로 1952년부터 1955년까지 랭스(Reims) 제112공군기지를 지휘했으며, 이후 장군으로 진급해 스트라스부르 인근 독일 라르(Lahr)에 주둔한 제1전술공군군단(1st CATac) 사령관을 맡았다. 이후 참모직의 요직들을 거친 그는, 샤를 드 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과 프랑스의 미래 지대지 로켓 수에 대해 의견이 맞지 않으면서 공군 대장(4성 장군) 계급으로 예편을 선택했다.

"세계 최고"라는 평가

1940년 프랑스 공군의 역사가이자 그의 친우인 이브 미슐레(Yves Michelet)에 따르면, 아카르트는 제2차 세계대전 전 기간을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전투기 조종사 중 한 명이자, 무엇보다 가장 탁월한 전투부대 지휘관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그가 1939~40년에 지휘한 GC I/5 비행단 제1전대는 프랑스 전역에 참전한 약 53개 전대 가운데 단연코 가장 많은 공중전 승리를 거둔 부대였다.

미슐레는 만약 연합군 지도부가 1944~45년에 아카르트의 새 부대를 더 잘 활용했다면, 특히 미국 폭격기 승무원들을 공격하던 독일 전투기를 요격해 수많은 폭격기 승무원의 목숨을 구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드골에게 정면으로 "안 된다"고 말한 사람

아카르트는 특히 직업군인들 사이에서 극소수에 속하는, 드골에게 정면으로 마주 보고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거절 의사를 밝힌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끝내 정치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는 비할 데 없는 침착함, 겸손함, 따뜻한 인품, 그리고 희귀할 정도의 지성을 지닌 독특한 인물이었으며, 특히 그의 겸손함은 속담처럼 회자될 만큼 유명했다. 그를 알던 사람들은 모두 존경과 애정, 깊은 감탄, 심지어 진심 어린 흠모의 마음까지 품고 있었는데, 이브 미슐레는 이러한 평가가 충분히 정당하다고 말한다.

참고: GC(전투 비행단)란?

GC는 프랑스어 "Groupe de Chasse", 즉 전투 비행단(Fighter Group)을 뜻하며, 경우에 따라 24~34기의 항공기로 구성되고 각 12기씩 두 개의 전대(escadrille)를 포함한다. 1940년 5월 10일 당시 GC I/5는 미국에서 제작되어 프랑스 부르주(Bourges)에서 조립된 커티스 H-75 32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여기에는 예비 기체도 포함되어 있다. 일부 영어권 저자들은 GC를 "Combat Group(전투단)"으로 잘못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오류이다.

화려한 전적의 실체

1939년 9월 이후 처음으로 개화할 기회가 주어진 1940년 5월 10일, 아카르트는 첫날 네 기의 확정 격추를 기록했고, 다음 날 두 기, 5월 18일에는 세 기를 추가했다(추정 격추는 제외). 놀라운 점은 그의 전적이 지닌 신뢰성이다. 격추된 적기 대부분이 그의 자대가 위치한 쉬이프(Suippes) 비행장이나 그 인근, 혹은 프랑스군이 점령한 지역에 추락하여 수백, 수천 명의 목격자 앞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이 전적들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프랑스 전역의 기간

프랑스 전역은 1940년 5월 10일부터 6월 24일까지 지속되었다. 그중 '프랑스 공방전(Battle of France)'이라 불리는 후반부는 특히 됭케르크 철수(5월 26일~6월 3일) 이후인 6월 5일부터 24일까지이며, 6월 5일 독일군의 솜(Somme)과 엔(Aisne) 방면 공세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