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821년: 그리스 혁명의 운명을 가른 먼 곳의 전쟁

1821년: 그리스 혁명의 운명을 가른 먼 곳의 전쟁

1821~1823년 오스만-페르시아 전쟁은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두 강대국 사이에 벌어진 국경 분쟁으로 촉발되었다. 러시아는 터키를 압박하기 위해 이 분쟁을 은근히 부추겼다. 같은 해인 1821년에는 그리스 혁명이 발발하여, 그리스인들은 중요한 승리를 거두며 주요 지역들을 해방시켜 나갔다.

혁명 진압에 나서지 못한 오스만 제국

반군에 비해 터키 측은 압도적으로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22년 드라말리 원정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은 혁명 진압에 특별히 큰 병력을 배치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러시아의 위협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페르시아 카자르 왕조와 벌인 전쟁, 즉 '오스만-카자르 전쟁' 때문이었다. 페르시아는 터키가 그리스 문제에 발이 묶여 있는 틈을 정확히 노렸고, 러시아의 제안과 지원 속에 터키를 자극해 전쟁을 일으킨 뒤 서부 아르메니아 방면으로 진격해 나갔다.

바그다드 전선: 개전 초기의 승패

전쟁이 시작되자 터키 측이 먼저 주도권을 잡았다. 바그다드 파샤가 이끄는 오스만 군대가 페르시아 영토 안으로 치고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터키군은 패배했고, 무함마드 알리 미르자가 이끄는 페르시아군은 이들을 바그다드까지 추격해 도성을 포위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결정적 전투: 에르주룸 근교

그러나 전쟁의 향방을 실제로 가른 결정적 충돌은 아르메니아 전선에서 벌어졌다. 3만 명의 페르시아군을 이끈 것은 당시 페르시아를 대표하는 군사·정치 지도자였던 왕세자 압바스 미르자였다. 맞서는 터키 측 역시 이를 분쇄하겠다는 야심 아래 5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집결시켰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결정적 전투는 에르주룸(비잔틴 시대의 테오도시오폴리스) 인근에서 벌어졌다. 이곳에서 압바스 미르자는 수적으로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터키군을 완파하는 데 성공했다. 페르시아의 승리는 그들의 군대가 적보다 우수한 훈련을 받았던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스 혁명에 남긴 파장

이 패배 이후 터키는 어쩔 수 없이 페르시아 전선에 증원 병력을 보내야 했다. 그 병력은 원래 그리스로 보낼 수 있었던 군대였다는 점에서, 이 전쟁은 그리스 혁명의 성공에 결정적인 숨은 변수로 작용했다.

콜레라 발병으로 군사 작전이 중단되기는 했지만, 양국은 이후 2년간 계속 대치 상태에 놓였다. 마침내 평화 조약인 '에르주룸 조약'이 체결되면서 전쟁은 종결되었으나, 영토 변화는 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