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기록
공식 인정 격추 75기 (실제 기록 127기)
생애
르네 폰크(René Fonck)는 1894년 프랑스 솔시쉬르뫼르트(Saulcy-sur-Meurthe)에서 태어나 1953년 파리에서 별세했다. 그는 비행사이자 제1차 세계대전을 대표하는 에이스 조종사였다.
1915년 4월 조종사 면허를 취득한 폰크는 정찰 비행대인 카드롱-47(Caudron-47)에 배속되어 당대의 명기 G-4를 몰았다. 그의 첫 격추 기록도 바로 이 기체에서 나왔다.
이후 그는 수많은 명조종사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황새(Cigognes)' 비행집단에 소속되었다. 강력한 성능의 스파드(SPAD) 전투기의 조종간을 잡은 폰크는 1917년 5월 3일 두 번째 승리를 거두었고, 이것이 전쟁 내내 이어진 기적 같은 공중전 연승 행진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의 가장 큰 무기는 남다른 사격 정확도였다. 폰크는 번개처럼 빠른 기동으로 적기를 압박했고, 때로는 단 네 발에서 다섯 발의 총탄만으로 상대기를 격추하기도 했다. 1917년 5월 9일과 26일에는 전투 항공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위업으로 손꼽히는 '하루 여섯 대 연속 격추'를 두 차례나 달성하며 상대를 압도했다.
또한 1917년 9월 30일에는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 기스네메르(Guynemer)를 격추했던 독일의 와이세만(Wissemann)을 격추하며 동료의 원수를 갚았다.
폰크의 실제 격추 기록은 127기에 달하지만, 당시 프랑스군 참모부는 프랑스 방어선 안쪽에서 격추한 기체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그의 공식 기록은 75기에 머물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전쟁 내내 단 한 번도 부상을 입지 않았고, 탑승한 기체가 적탄 한 발에도 맞지 않은 채 전역을 마쳤다는 점이다. 이는 그의 비범한 조종 실력과 침착함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전쟁이 끝난 후인 1926년 9월, 린버그(Lindbergh)보다 1년 앞서 폰크는 시코르스키(Sikorsky)기를 타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북대서양 횡단 비행에 도전했다. 그러나 뉴욕 근교의 루즈벨트 필드(Roosevelt Field)에서 이륙하던 중 과적된 기체가 전복되면서 비극이 닥쳤다. 동승자였던 클라비에(Clavier)와 이슬라모프(Islamoff)는 목숨을 잃었지만, 폰크 자신은 다행히 무사했다.
목숨을 건 승부를 수없이 반복해 온 사람에게 '행운'이라는 말이 어울린다면, 그것은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의 비할 데 없는 에이스, 르네 폰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