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아리스티드 모라이티니스: 그리스 해군 항공의 개척자이자 제1차 세계대전의 에이스

전적

공중전 확인 격추 9회

생애

해군 항공의 시작

1891년 태어난 아리스티드 모라이티니스(Aristide Moraitinis)는 그리스 군사 항공의 위대한 개척자 중 한 명입니다. 1910년 그는 해군학교 과정을 마치고 소위 계급으로 임관했습니다. 1912년 10월 5일 발칸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그는 어뢰정의 부함장으로 복무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시기에 그리스 해군은 육군과 마찬가지로 항공 분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12년 말, 해군성은 터키가 장악하고 있던 다르다넬스 해협을 마주한 렘노스 섬의 무드로스에 배치할 프랑스제 아스트라(Astra) 수상기 두 대를 확보했습니다. 모라이티니스는 이 막 태동하던 관측 비행대의 관측관으로 자원했습니다. 그리고 1913년 1월 24일, 그는 그리스 해군 항공대의 첫 전투 임무에 참여했습니다. 미카엘 무투시스(Michaël Moutoussis) 중위가 조종하는 '노틸러스(Nautilus)'라는 이름의 아스트라 수상기에 탑승해, 다르다넬스 해협에 정박한 터키 함대의 배치도를 스케치한 것입니다.

해상 항공의 발전

이 날부터 모라이티니스는 해상 항공의 발전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는 커맨더 파이지(Pizey)의 지휘 아래 영국 사절단이 엘루시스 근교에 설립한 비행학교에 들어갔고, 1914년에는 교관으로 임명되어 파이지의 교육 활동을 보좌했습니다. 몇 달 뒤에는 그리스 해상 항공대의 책임자로 임명됩니다.

그러나 그리스의 재정·정치적 어려움에 더해 학교를 초토화시킨 말라리아 유행까지 겹치면서 항공 활동은 거의 완전히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앙리 파르망(Henry Farman) F.22 수상기 네 대가 도착하면서 비로소 하나의 비행대대를 편성할 수 있었고, 그 지휘는 모라이티니스 중위에게 맡겨졌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영광

1916년 말, 이 부대는 타소스 섬으로 이동해 영국 왕립해군항공대(R.N.A.S.) 제2비행단에 배속되었으며, 영국 측은 브리스톨 스카우트 D(Bristol Scout D) 몇 기를 빌려주었습니다. 타소스와 렘노스를 오가며 작전한 이 부대는 터키 함대 상공에서 수많은 임무를 수행했고, 이듬해 봄 Z 비행대대로 개칭되었습니다.

1917년 6월 그리스가 연합국 진영에 정식으로 참전하면서, 영국으로부터 성능이 한층 뛰어난 항공기가 지원되었습니다. 소프위스 퍼프(Sopwith Pup)와 카멜(Camel) 전투기, 에어코 D.H.4(Airco D.H.4) 정찰기, 소프위스 베이비(Sopwith Baby)와 쇼트 184(Short 184) 수상기가 제공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타소스의 H1, 무드로스의 H2, 스타브루폴리스의 H3, 미틸리니의 H4 등 네 개 비행대대가 편성되었습니다.

1918년 1월, 모라이티니스는 전투기 부대를 직접 이끌고 눈부신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바로 독일군의 주력함 '게벤(Goeben)'과 '브레슬라우(Breslau)'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베이코즈에 주둔한 독일 공군이 반격에 나서 그리스는 두 대의 항공기를 잃었지만, 모라이티니스는 세 번의 격추를 기록했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코르벳 함장 계급으로 진급한 그의 전과는 화려했습니다. 대잠 초계 25회, 지원 임무 15회, 폭격 80회, 정찰 27회, 전투기 임무 18회, 그리고 공중전 20회에서 확인된 승리 9회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영국 국왕으로부터 D.S.O.(특별수훈장)를 받았고, 자국 정부로도 수많은 훈장을 받았습니다. 연합군과 함께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해군성은 그에게 직접 "모라이티니스 사령관(D.S.O.)께"라는 문구가 새겨진 에어코 D.H.9 한 대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비극적 최후

그러나 1918년 12월 22일, 살로니카에서 아테네로 향하던 연결 비행 중 그는 거센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며칠 후, 올림포스 산 정상에 추락한 비행기 잔해 속에서 아리스티드 모라이티니스의 유해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스 해군 항공의 초석을 다진 개척자는 이렇게 27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