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사카이 사부로: 제로 전투기의 전설, 200회 이상의 공중전에서 한 번도 후퇴하지 않은 일본 에이스

사카이 사부로(坂井三郎)는 누구인가

사카이 사부로(1916~2000)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해군을 대표하는 최고의 전투기 에이스입니다. 그는 삼菱 A6M '제로(零式艦上戦闘機)'를 몰고 연합군 전투기 64기를 격추했으며, 동시대 일본 조종사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로 꼽힙니다.

흥미롭게도 사카이 본인은 자신의 가장 큰 공훈으로 격추 기록을 꼽지 않았습니다. 그는 "200회가 넘는 공중전에서 단 한 번도 후퇴하지 않았다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성취라고 말했습니다.

초년 시절: 무사의 후손, 농부의 아들

사카이 사부로는 1916년 8월 25일 일본 사가현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조는 무사였지만, 집안은 이미 몰락하여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가난한 가정이었습니다. 학업 역시 순탄하지 않았고,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서 그는 군에 지원하기로 결심합니다.

해군 입대와 조종사의 길

1933년 5월 31일, 만 16세의 나이로 사카이는 일본 해군에 입대했습니다. 처음에는 포탑 기관총 사수로 복무했으며, 1936년 파일럿 양성학교에 선발되어 1937년 항공모함 조종사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이후 그는 1938년부터 1939년까지 중일전쟁에 참전하여 실전 공중전 경험을 쌓았고,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실전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카이는 중국 상공의 전투에 투입되며 당대 최강의 전투기로 명성 높던 미쓰비시 A6M 제로 전투기의 조종사로 선발되었습니다.

태평양 전쟁: 필리핀에서 뉴기니까지

미국과의 전쟁이 발발하자 사카이는 필리핀 침공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1942년 초에는 보르네오의 타라칸으로 전출되어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의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활약하며 13개의 공중전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질병으로 후방 근무를 하게 되었지만, 약 석 달 뒤 완쾌되어 4월에 뉴기니의 사사이 준이치 중위 편대에 합류했습니다.

과달카날 상공의 비극: 오른쪽 눈을 잃다

1942년 8월 7일, 사카이는 과달카날 상공의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오른쪽 눈의 시력을 영원히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손상된 전투기를 끝까지 조종하여 기지로 귀환했으며, 마취 없이 장시간의 수술을 견뎌냈습니다.

이후 5개월간 요양하고 다시 1년간 신규 전투 조종사 훈련 교관으로 복무했습니다. 1944년 4월에는 요코스카 항공대로 전속되어 이오지마에 배치되었고, 주로 단거리 출격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종전 전까지 연합군 전투기 4기를 추가로 격추했습니다.

전적과 생존

사카이는 전쟁 기간 동안 총 64기의 연합군 항공기, 대부분은 미군기를 격추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소속 부대의 원래 멤버 중 전쟁을 살아서 끝낸 단 세 명 중 하나였다는 사실입니다.

전후의 삶: 적과의 화해

전쟁이 끝난 후 사카이는 중위 계급으로 예편하고 승려의 길을 걸었으며, 인쇄소를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훗날 그는 미국을 방문해 과거 전장에서 맞서 싸웠던 적들과 직접 만나 우정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1982년에는 자신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혔던 SBD 돈틀리스 폭격기의 기관총 사수 해럴드 L. 존스와 도쿄에서 감동적인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도쿄에 거주하며 강연 활동을 이어가고 여러 권의 저술 활동도 병행한 그는,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골프 홀인원(hole-in-one)을 세 번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최후

사카이 사부로는 2000년 9월 22일, 아쓰기 해군항공기지에서 열린 모임 도중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4세. 그는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겪으면서도 적조류 존중하고 화해를 추구했던, 진정한 의미의 무인(武人)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