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선량한' 이탈리아인이 저지른 학살: 에티오피아인과 그리스인들의 잊혀진 비극

 선량한  이탈리아인이 저지른 학살: 에티오피아인과 그리스인들의 잊혀진 비극

역사상 최악의 전범, 로돌포 그라치아니

이탈리아 원수 로돌포 그라치아니(Rodolfo Graziani)는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전범 중 한 명입니다. 그러나 그는 겨우 4개월간 수감된 것을 제외하면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그라치아니는 1936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로, 스스로 광신적인 파시스트였으며 편집증에 가까운 의심과 강한 복수심을 지닌 자였습니다. 그는 에티오피아인들에 대한 깊은 증오를 품고 있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것을 드러냈습니다.

교회에서 넘어진 사건이 부추긴 광적인 증오

1936년, 그의 군대가 디레다와(Dire Dawa) 지역을 점령했을 때 그라치아니는 직접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바닥에 구멍이 뚫린 곳을 밟고 넘어져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라치아니는 에티오피아 사제들이 일부러 바닥을 부숴 자신이 넘어지도록 했다고 확신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탈리아인이 에티오피아 성직자들에게 품은 광적인 증오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다면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일로 끝났을 것입니다.

1937년 2월 19일, 정복당한 에티오피아의 섭정으로서 그라치아니는 새 이탈리아 왕자의 탄생을 기념해 이탈리아 점령 당국이 가난한 이들에게 시주를 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수류탄 투척 사건

자연스럽게 수많은 군중이 모였습니다. 군중 속에는 이탈리아 식민지 에리트레아 출신 남성 두 명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인 아브라차 데보스(Abracha Debos)는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파시스트 정치국에서 근무하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데보스는 이탈리아인들의 인종차별적 행태를 깊이 증오했고, 친구와 함께 수류탄을 지참한 채 행사장에 찾아갔습니다.

행사는 그라치아니의 연설과 에티오피아 관료들의 항복 접수로 시작되었습니다. 오전 11시경 빈민 구호품 배급이 시작되었고, 바로 그 순간 에리트레아 출신 두 사람이 수류탄 투척을 개시했습니다. 그들은 열 발의 수류탄을 던진 뒤 혼란 속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라치아니와 다른 이탈리아 고위 관료들은 수류탄 폭발로 부상을 입었습니다. 마치 악마의 가호라도 받은 듯, 그라치아니는 몸에서 365개의 파편이 제거된 후에도 목숨을 건졌습니다!

한편 범인들은 수도사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 데브레 리바노스(Debre Libanos) 수도원으로 피신했습니다. 이후 그들은 당시 영국령 수단으로 도피했으나 현지인들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정당성 없는 대학살

에티오피아에서 이탈리아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이미 공격이 일어난 순간부터 카라비니에리(헌병)는 군중에게 무차별적으로 발포해 수백 명을 살해했습니다. 이어서 파시스트 정부 관료 구이도 코르테제(Guido Cortese)는 "그라치아니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달라"며 에티오피아인에 대한 3일간의 학살을 명령했습니다.

"3일 동안 에티오피아인들을 죽이고 어떤 짓을 하든 허락한다." 그는 이탈리아 헌병과 병사들에게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두체! 두체!", "이탈리아 문화"를 외치며 그들은 살육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칼로 사람들을 학살하고, 휘발유를 끼얹어 산 채로 불태웠습니다. 희생자는 에티오피아인뿐만 아니라 그곳에 거주하던 그리스인들과 아르메니아인들까지 포함되었습니다. 이윽고 "문명화된" 이들은 학살당한 시신들과 함께 기념사진까지 찍었습니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만 최소 3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되었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수학한 경력이 있는 에티오피아인들은 집중적인 박해를 받았습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에티오피아인들이 다난(Danan), 오가덴(Ogaden), 노크라(Nokra), 달락 제도 등지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라치아니는 수감자들에게 최소한의 음식과 물만 공급하라고 명령했고, 그 결과 수천 명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사망했습니다. 게다가 이탈리아인들은 생존자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했습니다.

데브레 리바노스 수도원의 몰살

학살은 5월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탈리아군은 범인들이 데브레 리바노스 수도원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그라치아니는 현지 사령관에게 수도원의 모든 수도사를 몰살시키라고 직접 명령했습니다. 결국 수도원 축일이던 5월 20일, 320명의 무고한 수도사들이 처형되었습니다. 이들과 함께 지역 주민 최소 1,500명도 추가로 살해되었습니다.

평소 "선량한" 이탈리아인이라 불리던 이들이 저지른 참극이었습니다. 이 학살은 이후 "그라치아니 학살(The Massacre of Graziani)"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선량한  이탈리아인이 저지른 학살: 에티오피아인과 그리스인들의 잊혀진 비극

이탈리아인들이 웃으며 에티오피아인들의 시체 더미를 지켜보고 있다.

 선량한  이탈리아인이 저지른 학살: 에티오피아인과 그리스인들의 잊혀진 비극

트럭에서 에티오피아인들의 시신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