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볼레스와프 글라디치 — 미군과 함께 싸운 폴란드의 전설적 에이스 조종사

전적

17대 격추 (추정 2대 추가)

약력

볼레스와프 글라디치 — 미군과 함께 싸운 폴란드의 전설적 에이스 조종사
볼레스와프 글라디치(Bolesław Gładych)는 1918년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성장기 동안 여러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던 그는 결국 군인의 길을 선택하여 1938년 데블린(Dęblin) 항공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1939년 9월 1일 소위로 임관했지만, 폴란드 침공 전투에는 직접 참전하지 못했다.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GC 1/145 '바르샤바' 비행대대와 함께 비행하던 중 부상을 입었다. 1940년 6월, 그는 영국으로 탈출했다.

볼레스와프 글라디치 — 미군과 함께 싸운 폴란드의 전설적 에이스 조종사
1941년 4월 글라디치는 제303 폴란드 전투비행대대로 배속되었고, 같은 해 6월 23일 하루 만에 적기 3대를 격추하는 첫 번째 전과를 기록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곧이어 중상을 입어 오랫동안 비행 금지 처분을 받았다. 회복 후에는 제302 비행대대에서 복무했으며, 1943년 말에는 해당 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볼레스와프 글라디치 — 미군과 함께 싸운 폴란드의 전설적 에이스 조종사
1944년 초부터 글라디치는 미국 육군 항공대(USAAF) 제56 전투비행단(FG)과 함께 비행하기 시작했다. 폴란드 공군 사령부가 그의 복귀를 촉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지만, 그는 미군과 함께 싸우는 길을 택했고 결국 폴란드 공군에서 제외되었다. 의아하게도 미군 소속으로 두 자릿수 에이스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식적으로 미군 부대에 통합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실제로 글라디치는 '재미로', 아니 어쩌면 용병처럼 제56 전투비행단에서 비행한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는 영국 내 미군 부대에 비공식적으로 머물며 여러 활동을 했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이민해 한때 항공우주 산업에서 일했으며, 동시에 자신의 전투 경험을 담은 수많은 기사를 집필했다. 물론 그중 일부는 사실이었지만, 상당 부분은 과장된 내용이었다. 미국에서 심리학 학위를 취득한 글라디치는 이후 시애틀과 워싱턴에서 심리 상담사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