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돈산 전투(라틴어: Mons Badonicus, 웨일스어: Mynydd Baddon)는 500년경, 앵글로색슨족이 브리튼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브리튼인들이 앵글로색슨족에게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이 전투를 둘러싼 아서 왕 신화와 더불어, 현재까지 전해지는 빈약하고 상충되는 기록들 때문에 어떤 설명도 완전히 검증된 것은 없다.
최초의 기록
현자 길다스(Gildas Sapiens, † 570)는 저서 『브리튼의 멸망과 정복』(De Excidio et Conquestu Britanniae) 제26장에서 "바도니쿠스 산 포위전"을 언급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그는 이 사건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기며, 자신이 태어난 해, 즉 저술 시점으로부터 43년 전에 일어났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길다스는 아서 왕에 대해 이 부분에서도, 저술 전체 어디에서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베다 베네라빌리스는 『앵글족 교회사』(731년 완성)에서 이 전투를 다루었지만, 길다스의 문장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며, 역시 아서 왕에 관한 언급은 없다.
9세기에 현행 형태로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브리튼인의 역사』(Historia Brittonum)에서 비로소 아서 왕이 등장하며, 바돈산 전투는 색슨족과 벌인 열두 번의 전투 중 하나로 소개된다. 이후 『웨일스 연대기』(Annales Cambriae)에는 516년의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아서 왕의 승리로 돌려진다.
전투 장소

전투가 실제로 어디에서 벌어졌는지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잉글랜드, 웨일스, 심지어 스코틀랜드 인근까지 다양한 가설이 제시되고 있다.
주요 후보지
배스(Bath, 서머싯) — 몬머스의 제프리가 제안한 후보지이다. 배스는 색슨족에게 Baþon, Baðon, Baðanceaster로 알려져 있었다. 전투는 배스 인근의 언덕 중 한 곳에서 벌어졌을 것으로 보지만, 도시 자체가 격전의 중심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Bath'라는 단어는 게르만 계통이지만 'Badon'은 켈트 계통의 단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로마 시대에 배스는 아쿠아이 술리스(Aquae Sulis)로 불렸으나, 이 지역과 근처의 솔즈베리 힐은 로마인이 오기 훨씬 전부터 사람이 거주해 온 곳이다.
배드버리 요새 / 배드버리 링스(도싯) — 철기 시대의 오피둠(요새화된 언덕).
미니드 바에단(Mynydd Baedan) — 남웨일스.
벅스턴(더비셔) — 온천 마을.
리딩턴 성(윌트셔) —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의 오피둠.
당사자와 주인공에 대한 불확실성
9세기 역사가 넨니우스는 『브리튼인의 역사』에서 이 승리를 아서 왕의 공으로 돌렸다. 그는 바도니스 산에서 "하루 만에 아서의 전사들의 공격으로 960명이 죽었으며, 아서 외에 그들을 격파한 이는 없었다"고 기록했다.
반면 10세기 웨일스 수도사들이 작성한 『웨일스 연대기』는 "아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흘 밤낮 동안 어깨에 짊어졌으며, 브리튼인이 승리한 바돈 전투"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자 길다스는 전투에 아서가 참전했다는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았으며, 전투 연대보다 앞선 시대에 살았던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에게도 승리를 돌리지 않았다. 길다스가 바돈산 전투의 승자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고, 후대의 대부분 기록들이 아서에게 돌리는 것과 달리 그에게(혹은 누구에게도) 승리를 돌리지 않은 점—길다스가 아서와 동시대 인물이라면 이 승리를 기려야 했을 터인데도 말이다—은 커다란 미스터리이며, 아서를 더욱 궁금한 존재로 만든다. 이것이 역사학자들이 전설 속 아서의 실존을 의심하는 주요 근거 중 하나이다.
한편 색슨군은 서식스의 앨레(Ælle) 또는 웨식스의 서딕(Cerdic)이 이끌었거나, 두 사람이 동시에 지휘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앵글족과 색슨족 세력이 연합하여 브리튼군을 완전히 분쇄하고 세번 강 하구에 도달함으로써, 웨일스의 브리튼인들을 남부 브리튼인들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의도였음을 시사한다.
연대에 대한 상세
『웨일스 연대기』는 전투를 516년으로 기록한다.
길다스는 『브리튼의 멸망』(§ 26)에서 전투 43년 후에 저술했다고 밝히며, "그날로부터 마흔네 해째 달이 지났으며, 그해는 또한 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고 적었다. 이 기록을 해석하려면 저술 연대를 특정해야 한다.
제33장에서 길다스는 2인칭과 현재형으로 '섬의 용'이라 묘사된 폭군 마글로쿠누스(Maglocunus)를 비판하는데, 이는 웨일스어로 마일쿤(Mailcun)이라 불린 인물, 즉 그웨네드 왕국(앵글시 섬 포함)의 군주로 매우 유력하다. 『웨일스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547년에 역병으로 사망했다. 따라서 『브리튼의 멸망』은 이 날짜 이전에 저술되었고, 바돈산 전투(및 길다스의 출생)는 504년 이전임을 추론할 수 있다.
베다 베네라빌리스(『앵글족 교회사』 I, 16)는 길다스의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며 바도니쿠스 산 전투를 언급하지만, 객관적인 연대를 덧붙인다. 즉 "[앵글로색슨족이] 브리튼에 도래한 지 약 마흔네 해째"라는 것이다(전투와 『브리튼의 멸망』 사이의 시간 간격과 동일하다). 그런데 I, 15에서 그는 이 도래를 449년 또는 450년으로 잡는다. "주님 성육신 449년"이라 기술했지만, 동시에 황제 마르키아누스의 즉위년, 즉 450년 8월 25일에 해당한다고도 말하기 때문이다. 결국 베다는 바돈산 전투를 493년 또는 494년으로 설정하며, 이는 『브리튼의 멸망』의 연대기적 요소들과 모순되지 않는다.
결과와 영향
바돈산 전투는 영국의 정치·군사 역사에서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 전투는 색슨족의 침략을 저지했고, 브리튼인들이 이전에 상실한 영토를 회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다만 길다스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잔혹한 적들에 대한 최후의,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학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