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공식 확인된 격추 기록: 13기
약력


얀 줌바흐(Jan Zumbach)는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에게서 스위스 국적을 물려받은 특이한 배경을 지닌 인물이었다. 1936년, 그는 폴란드인으로 신분을 위장할 수 있는 서류를 직접 만들어 폴란드군에 입대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데블린(Dęblin) 항공사관학교(S.P.L.)의 사관생도였던 줌바흐는 1938년, 훗날 폴란드 최고의 에이스가 되는 스타니스와프 스칼스키(Stanisław Skalski)와 같은 해에 장교로 임관했으며, 제111 비행대대(Eskadra)에 배속받았다. 그러나 사고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1939년 9월의 폴란드 방어전에는 참전하지 못했다.
프랑스 망명 후에는 ECD 1155 부대 소속으로 독일군과 싸웠다. 영국에 도착한 뒤에는 제303 폴란드 전투비행대대의 창설 멤버 중 한 명이 되었는데, 이 부대는 이후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가장 많은 격추 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부대로 이름을 남긴다. 줌바흐는 자신의 격추 기록 열세 건을 이 부대에서 달성했으며, 단 한 건만이 다른 부대 소속 시절의 것이었다. 이후 1943년부터 1944년까지 제3 폴란드 비행대대를 지휘했고, 1944년부터 1945년까지는 제133 윙(Wing)의 지휘관으로 승진했다.

전쟁이 끝난 후, 공산화된 폴란드에서 그의 가문이 '제국주의자'로 분류되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막혔다. 줌바흐는 스위스 국적마저 내려놓았다. 평범하게 정착하는 대신 그는 밀수업자의 길을 택해 손목시계를 영국으로 운송했고, 이스라엘을 위해 무기와 병력을 호송하는 일도 맡았다. 1950년대 중반에는 파리에서 레스토랑과 나이트클럽을 차려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러나 모험을 멈추지 못한 그는 1960년대 초, 분리주의 지도자 모이즈 촘베(Moïse Tshombe)의 요청을 받아들여 카탕가 공군을 조직하며 다시 무대에 올랐다. 5년 뒤에는 '미스터 존 브라운(Mister John Brown)'이라는 가명을 쓰며 용병으로서 비아프라 전쟁에도 휘말리고 말았다. 이후 유럽으로 돌아와 프랑스에 정착한 줌바흐는 1986년 생을 마감했고, 유해는 고국 바르샤바에 안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