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피터 타운센드: 영국 공군 장교이자 마거릿 공주의 연인

개요

그룹 캡틴 피터 울드리지 타운센드(Peter Wooldridge Townsend, 1914년 11월 22일 ~ 1995년 6월 19일)는 영국 왕립공군(RAF)의 저명한 전투기 조종사이자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시종무관(Equerry)을 지낸 왕실 측근이었다. CVO, DSO, DFC 등 다수의 훈장을 받았으며, 마거릿 공주와의 비극적인 사랑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초기 생애와 군 경력

1914년 버마(현 미얀마) 랭군에서 태어나 헤일리버리 스쿨(Haileybury School)에서 교육받았다. 1933년 왕립공군에 입대해 크랜웰(Cranwell)에서 비행 훈련을 마쳤으며, 몬트로즈(RAF Montrose) 비행 교관, 탱거미어(RAF Tangmere) 기지 근무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제43 비행대대 편대장으로 참전했다.

1941년에는 헨스던(RAF Hunsdon) 기지에서 야간 작전을 지휘하는 윙 커맨더로 활약했고, 이후 제611 비행대대(스피트파이어 부대) 지휘관을 맡았다. 1942년 참모대학(Staff College) 과정을 수료한 뒤 1943년 1월 웨스트 맬링(RAF West Malling) 기지 지휘관으로 임명되었고, 1948년 그룹 캡틴으로 진급했다.

왕실 시종무관 시절

1944년 조지 6세의 임시 시종무관으로 발탁되었고, 같은 해 정식 임명되어 1952년까지 근무했다. 이후 엘리자베스 2세 즉위와 함께 여왕의 시종무관(1952~1953)을 겸임했다. 1950년 8월 왕실 부궁정장(Deputy Master of the Household)에 올랐고, 1952년에는 왕대비궁 차장(Controller at the Queen's Mother)으로 전보되었다. 1953년 왕실 업무를 은퇴한 뒤 1953~1956년 브뤼셀 주재 공군 무관으로 근무했다.

마거릿 공주와의 관계

타운센드는 1950년대 초 마거릿 공주와 깊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으나, 그가 이혼남이라는 사실이 걸림돌이 되었다. 당시 영국 국교회 교리와 왕실 관례상 이혼한 남성과 왕위 계승권자의 결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1953년 이혼이 확정된 후에도 두 사람의 결혼 문제는 국민적 논쟁과 헌법적 위기를 불러일으켰고, 결국 1955년 마거릿 공주가 "교회와 의무를 위해" 결혼을 포기한다고 발표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은 영국 현대사에서 왕실과 국민 감정, 헌법적 관습이 충돌한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

후반 생애와 저술 활동

1959년 벨기에 출신 마리-루스 자마뉴(Marie-Luce Jamagne)와 재혼해 안정된 가정을 꾸렸다. 1968년 영화 브리튼 전투(Battle of Britain)의 군사 고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쳤으며, 주요 저서로는 세계 일주 항해기 <『내 친구 육지여(Land My Friend)』>, 브리튼 전투사 <『독수리들(Eagles)』>, 야간 폭격기와의 전투 기록 <『우리에게 불리한 운명(The Luck Against Us)』>, 조지 6세 전기 <『최후의 황제(The Last Emperor)』>, 베트남 보트피플 소녀 이야기 <『하얀 배의 소녀(The Girl in the White Boat)』>, 나가사키 원폭 투하 르포 <『나가사키의 우체부(The Nagasaki Postman)』>, 자서전 <『시간과 기회(Time and Chance)』> 등이 있다.

가족과 말년

첫 부인 로즈메리 폴(Rosemary Pawle, 1921~2004)과の間에 두 아들 자일스(Giles, 1942년생)와 휴고(Hugo, 1945년생)를 두었으나 1952년 이혼했다. 장남 자일스는 '케임브리지 폭격기 및 전투기 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차남 휴고는 벨기에 리뉴 공국의 욜란데 공주와 결혼했다.

1995년 프랑스 랑부예(Rambouillet)에서 80세로 생을 마감했다.

주요 서훈

  • CVO(빅토리아 왕립 훈장 사령관) - 1947년
  • DSO(수훈 십자 훈장) - 1941년
  • DFC(비행 십자 훈장) - 1940년, 가산표창(Bar)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