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독감이란?
1918년 독감은 흔히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리지만, 이는 잘못된 명칭입니다. 실제로는 특히 독성이 강하고 전염력이 높은 독감 변이주(H1N1)가 1918년부터 1919년까지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발생한 팬데믹(범유행)입니다.
이 팬데믹으로 인한 사망자는 파스퇴르 연구소 추산 3천만 명을 포함해 2천만~4천만 명에 이르며, 일부 최근 재평가에서는 무려 1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희생자를 낸 팬데믹은 역사상 유례가 없으며, 약 3,400만 명(추정)의 사망자를 낸 흑사병조차 앞지릅니다.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의 유래
그렇다면 왜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중립국 스페인만이 1918년 당시 이 유행병에 관한 정보를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신문들은 프랑스 내 감염 사실을 적국에 군대가 약화되었다는 정보를 넘겨주지 않기 위해 철저히 비밀에 부치면서도, '스페인에서' 큰 피해를 내고 있다는 이 유행병을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렀습니다.
1918년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도 수많은 스페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독감에 걸렸습니다. 교전국에서는 언론 검열이 시행되던 것과 달리 스페인에는 언론 검열이 없었기 때문에, 세계는 스페인 기자들을 통해서야 전염병의 발생을 알게 되었고, 후세는 이를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바이러스의 기원과 확산 경로
1918년 바이러스는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가설에 따르면, 이 바이러스는 오리에서 돼지를 거쳐 인간에게 전파되었거나, 또 다른 논쟁적인 가설에 따르면 조류에서 인간에게 직접 전파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이러스는 빠르게 미국으로 퍼져나갔고, 이곳에서 더 치명적인 형태로 변이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환자의 3%가 사망했는데, 이는 다른 독감 유행 시 사망률이 1,000분의 1 미만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치입니다. 이후 바이러스는 유럽 전역으로, 그리고 식민지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며 팬데믹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만 약 40만 8천 명이 사망했지만, 전시 검열로 인해 그 심각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신문들은 이미 프랑스에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열이 덜한 중립국 스페인에서 새로운 전염병이 발생했다고만 보도했습니다.
전례 없는 확산 속도
1918년 같은 해에 끝난 제1차 세계대전보다도 몇 달 만에 더 많은 희생자를 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1919년까지 피해가 계속되었습니다.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는 번개같았습니다. 3개월도 지나지 않아 여러 나라와 대륙에서 동시에 감염 집단이 발생했으며, 미국의 양쪽 해안에는 불과 7일 만에 도달했습니다. 지역별로 두세 차례의 유행 파동이 이어졌는데, 이는 특히 선박과 철도를 이용한 교통의 발달, 그리고 무엇보다 군대의 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초기 통계가 부실하게 작성되어 정확한 수치를 알기 어렵지만, 주로 1918~1919년 겨울 동안 약 10억 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2천만~4천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20세기 초 기준으로 상한치는 불확실하지만, 아시아·아프리카·남미 국가들에 대한 회고적 추산을 반영한 후 5천만~1억 명으로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이 팬데믹을 통해 국제 사회는 전염병 위협의 세계적 성격과 위생 관리 및 감시망 구축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국제연맹 규정에는 국제 보건위원회 설립 의지가 담겨 있었고, 이것이 훗날 세계보건기구(WHO)로 발전하게 됩니다.
의학적 영향과 통계상의 이례 현상
이 팬데믹에서 사망자는 주로 젊은 성인층이었다는 점이 놀라운 특징입니다. 원래 젊은 성인은 독감에 가장 저항력이 강한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 연령층이 직업적 또는 전쟁 관련 이유로 가장 많이 이동하고, 작업장 등 많은 사람과 접촉하는 환경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감염 위험이 높다는 것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접촉이 많을수록 감염 위험이 커진다는 이 관찰은 역사학자들에 의해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1866년 리에주 콜레라 유행 등).
그러나 실제 원인은 이 연령층의 면역체계가 새로운 바이러스에 과도하게 반응하여 모든 장기를 손상시키는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세계 인구의 50%(약 10억 명)가 감염된 것으로 추산되며, 2,500만~5,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학계의 합의는 약 3천만 명 사망입니다.
이 독감은 무엇보다 매우 높은 전염성이 특징입니다. 두 사람 중 한 명이 감염될 정도였습니다. 잠복기는 2~3일이며, 이후 3~5일간 고열, 면역 방어력 약화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평소라면 양성으로 끝났을 합병증이 이번에는 3%의 치명률을 보였는데, 이는 일반 독감의 20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바이러스 자체는 환자를 약화시킬 뿐이며, 결국 합병증으로 사망합니다. 당시에는 항생제(10년 후에야 발견됨)가 없어 이러한 합병증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높은 사망률은 세균성 기관지 중복감염과 바이러스성 폐렴에 기인합니다. 젊은 성인층이 우선적으로 공격당한 것은, 과거 유사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적 있는 고령층이 상대적으로 면역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918년 바이러스의 정체
바이러스의 유전적 특성은 영구동토(북방 국가의 얼어붙은 땅)에 보존되어 있던 이누이트인과 노르웨이인 시신에서 최근 부검을 통해 채취한 조직 덕분에 규명되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H1N1형 독감 바이러스입니다.
- 모체 바이러스(불명 변이주): 전염성은 매우 높지만 독성은 보통 수준인 원조 독감 바이러스로, 변이를 거쳐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모체 바이러스는 1917~1918년 겨울부터 중국에서 창궐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1918년 4월부터 6월에야 식별되고 철저히 관찰되기 시작했습니다.
-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H1N1 변이주): 미국에서 출현한 것으로 보이는 고독성 바이러스로, 전 세계에서 2,1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이 명칭에는 일반적으로 '모체 바이러스'까지 포함됩니다. 더 치명적인 이 변이주는 1918년 9월 중순~12월, 그리고 1919년 2월~5월의 두 차례 치명적인 유행 파동을 일으켰으며, 모든 대륙과 모든 인구 집단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팬데믹의 여파: 마스크 의무화와 사회적 충격
미국 시애틀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승객의 탑승을 금지하도록 차량 운행 담당자에게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거의 1년 동안 각국의 교통과 경제는 마스크 착용 등 위생 조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난 유명 인사
-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프랑스 시인
-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d), 프랑스 극작가
- 에곤 실레(Egon Schiele), 오스트리아 화가
- 호드리게스 알비스(Rodrigues Alves), 브라질 대통령
- 조 홀(Joe Hall), 영국 아이스하키 선수
바이러스 연구의 한계와 교훈
기술적인 측면에서 볼 때, 보존 상태가 양호한 바이러스 검체가 없어 이 바이러스 고유의 병원성 특성을 직접 연구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독감 바이러스군 전체를 연구하는 방식으로만 그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 매우 높은 전염성으로 유행병 또는 팬데믹 양상을 유발
- 높은 변이성으로 인해 해마다 독성이 달라지고 면역 효과가 무효화됨
- 이 변이주의 특히 큰 독성(심각한 신체 약화)
- 결국 이 바이러스는 면역 방어력만 약화시킬 뿐 그 자체로 사인이 되지 않으며, 신체 약화 정도에 따라 동반되는 합병증이 치명적임
항생제의 부재(항생제는 바이러스 질환 자체는 막지 못하지만 세균성 합병증은 억제할 수 있음) 역시 결정적인 요인이었습니다.
세계 보건 체계의 탄생
이 팬데믹이 남긴 가장 중요한 결과물은 생물학적 위협의 세계적 성격에 대한 각성입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결국 미국, 유럽, 그리고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인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이 그것입니다. 이에 따라 국제연맹은 세계적 보건·의료 감시 기구를 창설하게 되었고, 이것이 후에 세계보건기구(WHO)가 됩니다.
또한 치명적인 독감 유행이 최대 39년의 간격을 두고 재출현하는 주기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 대유행이 1968년에 있었기 때문에 WHO는 통계적으로 2010년에서 2015년 사이에 치명적인 독감 팬데믹이 출현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수년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온전한 변이주를 복원하여 직접 연구 가능한 형태로 만들고, 이를 통해 적절한 방어책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대사 최초의 대팬데믹
1918~1919년 팬데믹은 통상 합의에 따르면 약 3천만 명의 사망자를 내며 근대 이후 최초의 대규모 팬데믹이 되었습니다. 희생자 수 면에서 페스트나 에이즈에 필적하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팬데믹 중 하나입니다. 다만 에이즈는 이미 집계된 2,400만 명의 희생자를 넘어 지금도 계속 생명을 앗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