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가옥 내부의 화덕 배치 모습. ⓒ INRAP / PRESS SERVICE
지금 이곳은 거대한 공사장처럼 보이지만,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수백 년 전의 풍경을 떠올릴 수 있다. 프랑스 두(Doubs) 주 퐁타르리에(Pontarlier)의 그라비예(Gravilliers) 지구에는 교회와 네크로폴리스(묘지), 가옥들, 경제 활동 공간을 갖춘 메로빙거(Merovingian) 시대의 마을 하나가 온전히 존재했던 것이다. 현대적인 경제 개발구역이 조성되기 전, 국립 예방고고학연구소(Inrap)의 고고학자들이 이 유적을 발굴해냈으며, 연구진은 이곳을 '프랑스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복합 유적'이라고 평가한다.
알프스 횡단로의 요충지, 퐁타르리에
이 마을은 스위스 국경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메로빙거 시대에 퐁타르리에는 북유럽에서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도로가 쥐라 산맥을 넘는 지점에 위치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다.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기단과 기초뿐이지만, 그 연대는 6세기에서 7세기, 즉 중세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독특한 목조 건축 양식
남아 있는 흔적에 따르면 이곳에는 200~300㎡ 규모의 대형 건물 약 10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들은 굵은 기둥으로 지지되었으며, 칸막이로 나뉜 공간은 사람의 거주 공간으로, 더 개방된 공간은 가축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바실리카식 평면을 갖춘 교회를 포함해 모든 건물이 목조로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건축 양식은 이번 발굴 이전까지 독일어권 스위스와 바이에른 지역에서만 알려져 있었다.
이 밖에도 식량 저장이나 가축 보호용으로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움집(半地下式 소형 가옥) 수십 동의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마을 곳곳에는 무덤 74기가 분포해 있었다. 또한 인근에서는 소와 말 등 가축 뼈 수천 점이 출토되어, 최소 600㎡ 규모의 도축장이 운영되었음을 시사한다.
게르만 귀족들의 거점이었을까?
이 마을은 533년 메로빙거 왕조가 부르군트 왕국을 정복한 시기와 겹친다. 메로빙거인은 오늘날 벨기에 지역에 뿌리를 둔 프랑크족 계열 부족으로, 정복 이후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게르만계 귀족 가문들을 이곳에 정착시켰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무덤 발굴 과정에서 회수된 유물들—보석류, 검, 박차 등—은 주민들이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렸음을 보여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마을은 단순한 촌락이 아니라 일종의 장원(莊園)이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마을은 약 200년간 유지되다가 비교적 빠르게 버려졌는데, 흥미롭게도 폭력이나 파괴의 흔적 없이 평온하게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 왜 사람들이 이곳을 떠났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으며, 향후 추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