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9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선전과 검열

전쟁을 부추긴 선전(프로파간다)

전쟁 기간 동안 프랑스 사람들이 독일군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독일군은 프랑스 신부들을 공격하고, 포로들의 손을 잘랐으며, 여성들을 폭행하고 아이들을 학살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완전한 날조였고, 바로 이것이 '선전(propaganda)'입니다.

엽서 등에 대량으로 유통된 반독일 선전은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 적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젊은이들이 스스로 군에 지원하도록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상실한 알자스와 로렌 지역을 되찾아야 한다는 오랜 기억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프랑스 병사들에 대한 선전 역시 한결같았습니다. 그들은 '전쟁터로 떠나는 것을 기뻐하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적을 무찌르는 영웅으로 그려졌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수많은 영웅담이 들려주어졌고, 그들 역시 조국을 지키겠다는 결심으로 입대하고자 했습니다. 학교는 이러한 선전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교육 과정 자체가 애국심 고취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진실을 가린 검열

전선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는 전쟁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알려졌습니다. 물론 전쟁 중에도 이미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병사들이 보내는 소식은 철저한 검열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병사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 한 통이 모두 열람되었고, 내용에 따라 발송 여부가 결정되었습니다. 우편물은 병사들과 그 가족들에게 몇 안 되는 정신적·심리적 지지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검열의 대표적인 예는 크리스티앙 카리옹 감독의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Joyeux Noël)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1914년 성탄절에 독일군, 프랑스군, 영국군이 참호에서 일시적으로 휴전하며 우호를 나누던 실제 '크리스마스 휴전' 사건을 다루는데, 당시 병사들의 편지가 이 화합 사건을 언급하지 않았는지 검열관들이 읽어 확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러한 일은 반드시 은폐되어야 할 사건이었고, 독일인은 끝까지 싸워야 할 적으로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신문들 역시 끊임없는 검열을 받았습니다. 전선의 진실을 보도할 수 없게 된 언론은 결국 선전과 다름없는 내용만을 반복했고, 후방 국민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두개골에 거짓을 채운다는 뜻의 '부라주 드 크란(bourrage de crâne)'이라는 표현까지 생겨났습니다.

간신히 얻어낸 휴가로 고향에 돌아온 병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겪은 참호의 지옥 같은 현실을 가족들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선과 후방 사이의 이러한 정보 격차야말로, 전시 선전과 검열이 만들어낸 가장 잔혹한 결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