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격포란?
박격포는 발사각이 45도를 넘는 높은 각도에서 간접 사격을 수행하는 화기입니다. 종 모양으로 그려지는 곡선 탄도 덕분에, 평사 사격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장애물 뒤에 숨은 목표물까지 공격할 수 있습니다. 발사 시 발생하는 반동 에너지는 지면이나 차량의 보강 바닥에 직접 흡수되며, 무기 자체는 짧고 대체로 강선이 없는 매끈한 포신을 가집니다.
대부분의 박격포는 포구에서 장전되며, 고정된 격발침 위로 탄약을 떨어뜨려 발사합니다. 다만 구경이 크고 포신이 긴 경우에는 후미 장전 방식과 격발 기구를 채택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드물게 쓰인 변형으로 '스피곳(spigot)' 방식이 있는데, 이는 포탄이 발사체 전체를 감싸고 발사체는 단순한 안내 봉 역할만 하는 형태입니다.
17세기 공성전용 무기로 탄생한 박격포는 20세기에 들어 보병의 없어서는 안 될 지원 화기로 자리 잡았습니다. 참호에 숨은 적을 공격할 수 있으면서도 기존 야포보다 훨씬 기동성이 뛰어나고 물류 부담이 적기 때문입니다.
공성 박격포
박격포는 17세기, 공성전에서 은폐된 목표를 공격할 수 있는 포의 필요성에서 탄생했습니다. 당시 총포의 보급과 성능 향상에 따라 방어 시설은 평사 포탄으로는 파괴할 수 없는 두터운 흙제 방벽으로 진화했습니다. 이에 요새 방벽 너머로 곡사탄인 폭탄(bomb)을 날려, 그때까지 안전하게 숨어 있던 수비병들을 공략하는 아이디어가 등장했습니다.
느리게 낙하하고 반등하지 않는 이 새로운 탄환에는 별도의 개량이 필요했습니다. 화약으로 채운 속이 빈 탄체에 도화관으로 점화하는 구조가 채택되었지만, 이 방식은 탄체의 도화선과 추진 장약을 차례로 점화하는 까다롭고 위험한 이중 점화와 정교한 탄도 계산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박격포는 전문 요원만이 다룰 수 있는 무기로 남았습니다. 게다가 큰 구경과 바퀴 없는 거치대 때문에 기동성이 크게 떨어져 공성전에서만 유용했으며, 전장에서 은폐 사격을 위해선 대포와 박격포의 중간 형태인 유탄포(howitzer)가 발명되어 활용되었습니다.
19세기 말 콘크리트 요새의 등장은 더욱 강력한 공성 박격포의 출현을 불러왔습니다. 카스메이트(포좌실)의 천장을 돌파하기 위해 특수 철갑탄을 발사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런 박격포는 제2차 세계대전까지 개발되었지만, 쓸 만한 목표가 사라지면서 전쟁 중 자연스럽게 퇴장했습니다. 그 정점에는 구경 600mm의 독일 자주박격포 '카를(Karl)'이 있었습니다.
보병 박격포
현대적 의미의 박격포는 제1차 세계대전의 진창 참호에서 태어났습니다. 보병들은 마주 보는 참호 속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필요로 했고, 어뢰발사관이나 유탄발사기처럼 곡사하는 일련의 무기들이 개발되었습니다. 1915년 윌프리드 스토크스 경(Sir Wilfred Stokes)이 개발한 '참호 박격포'가 최초의 근대 박격포가 되었고, 프랑스 군인들이 '크라푸요(crapouillot)'라 불렀던 이 무기와 파생형들은 종전까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곡선 탄도 덕분에 전선 한참 뒤에서 사격하는 야포보다 적 참호를 더 쉽게 타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후 이 무기들은 개량을 거쳐 오늘날의 박격포로 완성되었습니다. 분해·운반이 가능해 소규모 인원이 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착발 신관의 도입으로 탄약의 위력도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보병 박격포의 표준을 확립한 것은 1920년대 81mm와 60mm 두 가지 모델을 설계한 브랑트(Brandt)사였습니다.
이 새로운 무기는 받침판(기좌), 포신, 양각대의 세 부분으로 분해되며, 세 부품 모두 보병 한 명이 걸어서 운반할 수 있어 기동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탄약인 81mm 포탄은 꼬리 날개로 끝나며 그 주위에 추진 장약이 부착됩니다. 사용법도 간단합니다. 포구에 포탄을 넣으면 포탄이 포신 아래로 떨어지면서 탄저부의 뇌관이 포신 바닥의 고정 격발침에 부딪혀 발사됩니다. 이 원리는 단순하고 포신에 정밀한 움직임 부품이 필요 없어 제작이 쉬우며, 숙련된 사수는 분당 20~25발을 발사할 수 있습니다.
조준과 사격 준비 작업도 단순하여 기존 야포처럼 많은 인원이나 특수 장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사거리는 양각대의 핸들로 포신을 조금씩 기울여 조절하고, 추진 장약을 추가하거나 제거해 미세 조정합니다. 관측과 사격 수정은 쌍안경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이 무기는 빠르게 입지를 다져 대부분의 국가가 변형된 형태로 채택하거나 모방했습니다. 예컨대 소련은 82mm 구경을 선택했는데, 이는 81mm 탄약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정확도는 다소 저하)이 있으면서, 역으로 자국 탄이 적에게 호환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重)박격포
소련은 근접 지원 박격포를 발전시켜,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38년 연대급 부대용 구경 120mm 박격포를 실전 배치했습니다. 1941년 여름의 처참한 손실로 기존 야포가 크게 부족해지자, 소련군은 대포 없이 남겨진 포병들에게 박격포를 맡기는 새로운 운용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108문으로 편성된 박격포 연대, 나아가 박격포 여단 단위로 운용된 중박격포들은 곡사포와 야포의 부족을 메웠습니다. 1943년에는 더 강력한 160mm 모델을 내놓았고, 전후에는 240mm 모델도 선보였습니다. 이 박격포의 100kg 포탄은 155mm 곡사포탄을 훨씬 능가하는 파괴력을 자랑했습니다. 사거리가 짧아 용도가 제한적이었지만, 값싼 이 포병 화력은 돌격 부대의 진출로를 여는 데 극도로 효과적이었습니다. 무게는 600kg이며 사거리는 600m부터 12km까지였습니다.
자주박격포
제2차 세계대전 중 박격포는 도보 부대를 따라갈 만큼 충분히 기동성이 좋았지만, 새롭게 등장한 기계화 부대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차량 지원이 필요해졌습니다. 초기 해법은 바닥을 보강한 차량 위에서 일반 보병 박격포를 발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준궤도 장갑차와 트럭뿐 아니라 구식 전차도 활용되어 포탑 자리에 박격포가 장착되기도 했습니다. 이 경우 무기는 차량에서 내려 지상에서 운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티거(Panzer VI) 차대에 올라선 거대한 '슈름티거(Sturmtiger)' 같은 모델도 등장했습니다.
그 후 무기가 차량에 통합되어 차량 안에서만 운용되는 진정한 의미의 자주박격포가 등장했습니다. 이 분야의 선구자 중 하나는 이스라엘군(차할)으로, 소련산 중구경 포신을 M4 셔먼 같은 차대에 재활용했습니다. 소련도 2S4, 2S9 같은 모델로 뒤따랐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형태는 핀란드와 스웨덴이 개발한 AMOS로, 쌍열 포신에서 적외선 유도 스마트 탄약을 발사해 전차의 상부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해상에서의 활용
또 다른 운용 분야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등장한 대잠전입니다. 당시 잠항 중인 잠수함을 공격하려면, 함선은 함미에 위치한 폭뢰 투하 레일을 사용하기 위해 잠수함 바로 위를 항해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ASDIC(소나)으로 유지하던 음향 접촉을 잃게 됩니다. 이에 박격포를 이용해 함선 전방으로 폭약을 발사한다는 아이디어가 탄생했습니다. 영국 왕립해군의 첫 시험품인 '헤지혹(Hedgehog)'은 스피곳식 박격포를 사용했습니다. 이후 좀 더 전통적인 방식의 박격포가 '스쿼드(Squid)'와 '림보(Limbo)' 시스템에 채택되었습니다. 소련은 1949년 헤지혹을 모방한 MBU-200을 개발한 뒤, 이를 발전시켜 유효 사거리 600m의 MBU-600을 1956년에 완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