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로베르 조르주 니벨: 제1차 세계대전 프랑스군 총사령관의 흥망

로베르 조르주 니벨(Robert Georges Nivelle, 1856년 10월 15일 ~ 1924년 3월 23일)은 프랑스 튈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군인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 총사령관을 지낸 인물이다.

로베르 조르주 니벨: 제1차 세계대전 프랑스군 총사령관의 흥망

어머니가 영국인이었던 덕분에 프랑스어와 영어 두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그는 포병 장교로 훈련받았으며, 1878년 에콜 폴리테크니크(École Polytechnique)를 졸업했다.

그는 인도차이나, 알제리, 중국 등지에서 포병 장교로 복무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인 1914년 10월 페탱과 같은 시기에 여단장으로 진급했다.

베르됭 방어와 총사령관 승진

1916년 4월 19일, 니벨은 베르됭 방어 임무를 맡게 되며 페탱의 뒤를 이어 제2군 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망쟁 장군과 함께 두오몽 요새와 보 요새를 독일군으로부터 탈환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 과정에서 이미 인명에 대한 경시적인 태도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승리에 힘입어 그는 '신속한 승리'를 약속하며 프랑스 하원 육군위원회의 기대를 모았고, 1916년 12월 25일 조프르 장군을 대신해 프랑스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조프르는 프랑스 원수의 지위를 받았으나, 결정적 돌파구를 열지 못한 채 2년간의 참호전에 소진된 지휘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니벨 공세와 대실패

유창한 영어 실력 덕분에 니벨은 영국 동맹국의 호감을 쉽게 얻었다. 그는 베르됭 일대에서 벌어지던 소모전을 종식시키고 '기습 공격'으로 전환하기로 결심했다. 즉, 포격의 장막 아래 대규모 정면 돌격을 감행해 전쟁의 승패를 한 번에 결정짓겠다는 구상이었다. 이 계획에 매료된 영국 총리 로이드 조지는 영국군을 니벨의 지휘 아래 두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비밀 엄수는 니벨의 미덕이 아니었다. 그는 만찬 자리에서 숙녀들에게 공세 계획을 이야기했다고 전해지며, 설상가상으로 독일군은 점령한 참호에서 그의 공격 계획서 사본까지 입수하고 있었다.

결국 1917년 4월 16일 개시된 그의 공세는 강력한 독일군 방어선 앞에서 기습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했다. 엠 드 다메(Chemin des Dames, '숙녀들의 길') 전투는 실패로 끝났고, 인명 피해는 극심했다. 연합군은 미미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무려 35만 명의 병력을 상실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1917년 프랑스군 반란'의 시작이었다. 전장 한복판에 위치한 크라온(Craonne)이라는 지명은 '크라온의 노래(La Chanson de Craonne)'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 노래는 오늘날까지 제1차 세계대전기 반란 병사들과 함께 회자되고 있다.

불명예 속의 말년

공세 실패 한 달 후, 니벨은 페탱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1917년 12월에는 불명예 속에 북아프리카 주둔 프랑스군 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1921년 은퇴했으며, 1924년 자신의 침대에서 평온히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