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베르됭 전투 전야: 독일군의 표적이 된 취약한 요충지

베르됭의 지리적·전략적 위치

베르됭은 프랑스군 방어선이 전방으로 돌출된 형태(살리앙트)를 이루는 요충지였다. 이로 인해 여러 방면에서 적에게 포위될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었고, 무즈(Meuse) 강이 구역을 가로지르면서 방어는 더욱 복잡해졌다. 이 돌출부 안에는 두오몽(Douaumont)과 보(Vaux) 요새를 비롯한 여러 요새가 자리하고 있었다.

신뢰를 잃은 요새들

그러나 리에주, 나뮈르, 모베주 등의 요새들이 독일군의 중곡사포(하우처)에 손쉽게 파괴되면서, 프랑스군 지휘부는 더 이상 요새 방어를 믿지 않게 되었다. 결국 1915년 8월 5일자 명령에 따라 베르됭 요새들의 대포는 철거되었고, 이는 요새의 작전 능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당시 조프르(Joffre) 최고사령관은 자신이 계획 중이던 공세 작전을 위해 이 포들을 필요로 했다. 요새를 수비하던 주둔 병력 역시 종종 수십 명 수준으로 축소되어 있었다.

허술해진 방어 체계

방어 시설 역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원래 세 겹으로 구성되어야 할 참호가 한 겹으로 줄어든 구간도 있었고, 철조망은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병력은 감축되어 조직력마저 떨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독일군이 공격을 개시할 경우 지면 획득을 노릴 것임을 충분히 시사하는 것이었다.

최근 몇 달간 이 구역이 누려온 상대적인 평온함은 프랑스군 지휘부가 이 전선 구간에 소홀했던 배경으로 설명된다. 위기 의식이 흐려진 사이, 방어 태세는 갈수록 약화되어 갔다.

단 하나뿐인 생명줄, 보급로

베르됭 지역에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바르르뒤크(Bar-le-Duc)와 베르됭을 잇는 단 하나의 철도 노선만 남아 있었다. 1914년 독일군이 생미엘(Saint-Mihiel)을 점령하면서 베르됭~낭시(Nancy) 노선이 끊긴 것이다. 구불구불한 협궤 철도인 이 노선은 중장비 운송에는 부적합했다. 대신 철도와 평행하게 달리는 현영 도로가 하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훗날 모리스 바레스(Maurice Barrès)가 '성스러운 길(Voie Sacrée)'이라 명명하게 되는 도로이다. 후방과 연결되는 통로가 극도로 부족하다는 점은 이 전선 지역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