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켄하인의 전략적 선택: 왜 하필 베르됭인가
독일군 참모총장 에리히 폰 팔켄하인은 베르됭이 방어에 취약하다는 점, 그리고 대규모 병력을 이동시키지 않고도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곳을 공격 목표로 선택했습니다. 그는 독일군의 중포병 우위를 확신하며 '트롬멜로이어(Trommelfeuer)', 즉 '북소리 포격'이라 불리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마치 북을 두드리듯 끊임없는 포격 준비 사격을 가해 정복할 지역을 완전히 평탄화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압도적인 화력 집중
독일군은 베르됭 전선에 각종 구경의 포 1,225문을 집결시켰으며, 이 중 중곡사포만 542문에 달했습니다. 평균적으로 150m마다 210mm 곡사포 한 문이 배치된 셈입니다. 여기에 크루프(Krupp)제 420mm 곡사포 13문, 스코다(Skoda)제 305mm 곡사포 17문(스코다는 훗날 체코슬로바키아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380mm 해군 함포 2문까지 동원했고, 포탄 약 250만 발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하에 숨겨진 대규모 병력
독일군은 지하 은폐호인 '슈톨렌(Stollen)'에 보병 대대 72개를 매복시켰습니다. 이 작전에 배정된 20개 사단 가운데 10개 사단이 실제 전투에 투입될 예정이었고, 나머지 10개 사단은 다른 전선에서 병력을 차출해 벌어질 수 있는 결정적 전투에 대비한 예비대 역할을 맡았습니다.
프랑스군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거대한 규모의 준비 작업은 베르됭 수비군의 눈을 피할 수 없었고, 그들은 최고 군사 당국에 관련 정보를 끊임없이 보고했습니다.
제56·59 저격병(샤쇠르) 대대를 지휘하던 드리앙(Driant) 중령은 국회의원이자 국방위원회 위원이라는 신분을 적극 활용해 프랑스군 지휘부에 이 전선의 위험성을 거듭 경고했습니다.
조프르(Joffre) 장군이 공병 분견대를 파견하기는 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때였습니다. 베르됭 요새지역 사령관 에르(Herr) 장군은 이렇게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내가 포병 증원을 요청할 때마다 최고사령부는 오히려 내 포대 두 개를 빼앗아 갔다!"
귀를 막은 지휘부
1월 중순부터 독일군의 준비 상황은 프랑스 정보기관(제2국)의 확인, 항공 정찰이 촬영한 불길한 사진들, 그리고 알자스와 로렌 출신 탈영병들의 증언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프르는 이러한 경고에 귀를 막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