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제19군단은 퐁뒤파(Pont-du-Fahs) 평원 남쪽과 가파른 사면의 퐁뒤파–사우아프(Saouaf) 도로변에 진지를 구축한 채 자그완(Zaghouan) 산을 마주 보고 있었다. 5월 4일로 예정된 공격을 앞두고 쾰츠(Koeltz) 장군은 다음과 같은 지시를 하달했다.
• 좌익: 오랑(Oran) 사단이 퐁뒤파의 관문을 점령하여 르 쿠퇼(Le Couteulx) 기갑부대의 진로를 연다. 기갑부대는 드피엔(Depienne)과 자그완 마을로 돌진해 방어선 후방으로 우회, 적의 보급로와 통신망을 차단한다.
• 중앙: 모로코(Morocco) 사단이 중앙봉 자그완이 군림하는 능선들이 얽힌 산괴 그 자체를 공격한다.
• 우익: 알제(Algiers) 사단은 모로코 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자그완 남쪽·동쪽 기슭을 따라 즈리바(Zriba) 방면으로 밀고 나가며, 엔피다빌(Enfidaville)로 통하는 도로가 지나는 사우아프 계곡을 감시한다.
5월 4일 정오, 포화 속의 총공격
5월 4일 정오, 태양이 작열하는 가운데 프랑스군의 공격이 개시되었다. 적 포병의 포화가 평원을 쓸어대는 상황 속에서였다.
서쪽에서는 오랑 사단 소속 알제리 경보병들과 외인부대원들이 피해를 줄이기 위해 넓게 산개한 대형으로 포탄을 뚫고 전진했다. 그러나 퐁뒤파 남쪽에서 적 포병의 정확한 사격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정작 아군의 75mm 포대들은 사정거리 한계에 다다라, 포격에 노출된 평원을 낮에는 전진할 수 없었기 때문에 화력 지원조차 받지 못했다.
중앙에서는 모로코 경보병들과 구미에(Goumier) 부대가 도로의 움푹 파인 저지대를 통과하는 데 성공해 자그완의 첫 능선에 매달렸다. 이후 그들은 험준한 산악인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이 거칠게 뒤틀린 산괴 속을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갔다. 그러나 기관총과 박격포로 무장하고 강력한 포병의 지원을 받는 아프리카 군단(Afrika Korps)의 완강한 방어에 부딪혔다. 더구나 적은 자그완 정상(Pic du Zaghouan)이라는 훌륭한 관측소를 확보하고 있었기에, 산 아래의 어떤 움직임도 놓치지 않았다.
모로코 사단의 우측에서는 알제 사단이 사우아프 도로의 저지대를 건너지 못했다. 그곳에서는 아무리 사소한 움직임 하나에도 집중 포격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다만 좌익에서는 제9알제리척탄연대(R.T.A.) 소속 부바티에(Bouvattier) 대대가 5일에야 도로를 넘어 자그완의 남쪽 버팀목인 제벨레리(Jebel Leri) 사면에 매달릴 수 있었다. 다행히 그 좌측에서는 산괴 남쪽 가장자리에 진지를 잡은 모로코 대대, 곧 보프르(Beaufre) 대대의 압도적인 화력이 이들을 엄호해 주었다.
교착 속에 이룬 전략적 성공
5월 7일, 좌익의 오랑 사단이 마침내 퐁뒤파를 점령했고, 르 쿠퇼 기갑부대에게 드피엔으로 통하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바로 그날, 승패는 이미 북쪽 튀니스(Tunis)에서 결정되어 있었다. 이후 11일까지 자그완에서 계속된 치열한 전투는, 영국군이 '불칸(Vulcan)' 작전의 최종 추격 단계를 펼치도록 적을 붙잡아 두는 견제전에 불과하게 되었다.
설령 5월 4일과 5일 이틀 동안 제19군단이 자그완이라는 적의 축을 분쇄하지 못했다 해도, 주 공세를 위해서는 완벽하게 제 몫을 해냈다. 자기 배치의 경축부에 대한 이 위협에 신경을 곤두세운 독일군 지휘부는 5월 6일까지 제21기갑사단을 결전 지점인 메제즈(Medjez)에서 멀리 떨어진 자그완에 묶어 두었다. 게다가 4일에는 프랑스군의 공격 소식을 접하자마자, 마시코(Massicault), 즉 이틀 뒤 영국군의 주공 축선이 될 도로에서 대전차포 2개 대대를 철수시켜 퐁뒤파 북쪽과 세브크레쿠르지아(Sebkret-Kourzia) 방면으로 돌려보냈다.
이제 시선을 영국군의 돌파 전선으로 옮겨 보자.